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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回大会本選に参加した人の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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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回大会本選に参加した人の原稿
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가나가와 종합고등학교 3 학년
케이힐 에리
제가 어렸을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제가 언니와
싸우기라도 하면 회초리 또는 구두주걱으로 우리를 쫓아오시며 엉덩이를
때리셨습니다. 물론 핑계는 듣지 않으셨고 저희도 어머니에게 맞은 후에는 싸웠다고
하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45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키의
어머니셨지만 언제나 힘은 넘치셨고 어린 저에게는 어머니가 마치 호랑이 같아
보였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집은 가난했기에 어머니는 고등학교까지만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식에게만큼은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겠다고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일본어로 쓰여져 내용을 제대로 아시지도 못하시는 일본어 문제짐을 매일
체크하셨습니다. 물론 한국어 교육도 철저히 하셨습니다. 저는 "ㅗ" 와 "ㅓ" 발음
차이를 울면서 배웠습니다. 또한,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저는 일본어로 제
생각을 말하려 하면 어머니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전혀 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저는 서투른 한국말로 제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무서웠고
싫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을 걱정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의 표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감기를 걸리면 어머니는 왜 감기에 걸리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왜 감기에 걸려서 엄마를 걱정 시키는 거냐는 한국사람
나름에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활발하시고 명랑하시며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이셨던 어머니도 이제는 저보다
키가 작아지셨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키도 커졌고, 한국어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늘어 건방지게 말대꾸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너희들이 이만큼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이 엄마 덕분인 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일 공부하기 싫어하는 저희들을 책상머리에 앉히시고 공부를 시키신
것은 대단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셨을 겁니다.
그 덕분에 저는 영어도 일본말도 한국말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이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고 끈기있게 이끌어 주신 어머니 덕분에 성적도 괜찮습니다. 어렸을
때는 맞으면서 자랐지만 그 기억들은 지금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화를 내실 때 그 때는 몰랐지만 어머니의 진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갔습니다. 요즘은 어머니께서도 본인이 화를 내거나 때린다고 해서 그것이 통하는
나이가 지났다고 생각하시는지 많이 부드러워지셨습니다. 그 대신 어머니는 저희가
효도해 줄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때가 되면 진심으로 효도를 하고 싶습니다.
4
韓国語スピーチ部門
この世界
この世界で
世界で一番怖いもの
一番怖いもの
神奈川県立神奈川総合高等学校 3 年
ケイヒル エリ
わたしが幼いころこの世で一番恐ろしいものはお母さんでした。わたしがお姉ちゃんとケン
カをすると布団叩き、時には靴べらを持ってわたし達を追いかけてお尻を叩かれます。もちろ
ん言い訳なんて聞きませんし、わたし達もお母さんにお尻を叩かれたあとはケンカの内容なん
てどうでもいいものになっていました。145 センチという小柄なお母さんなのですが、パワーに
あふれていて小さい私にはお母さんが鬼に見えました。
わたしのお母さんは家が貧しかったこともあって高校までしか行っていません。なので、子供
には教育をしっかりさせようという気持ちがありました。わかりもしないわたし達の日本語で書か
れた問題集を毎日チェックしていました。もちろん、韓国語の教育も徹底していて、私は”ㅗ”
と”ㅓ”の違いを泣きながら習いました。お母さんとケンカしているときも、日本語で反論しようと
すると、わからないといって話を聞いてくれませんでした。なので、毎回つたない韓国語で反論
しなくてはいけませんでした。そんなお母さんが、小さい時は理解できなくて怖かったし嫌いで
した。
しかし、ある日テレビでこんな話しを聞きました。韓国人が怒るのは気に掛けている人に対し
て心配する気持ちやもどかしい気持ちからくるものだということです。確かにお母さんは私が風
邪をひくと「なんで風邪なんかになるの!!」と怒ります。しかし、これは「なんで風邪なんかひいて
お母さんを心配させるの」という韓国人なりの表現なのだなと思うようになりました。
そんな力があふれていたお母さんも、今やすっかりわたしのほうが背も大きくなり、韓国語も
知識も増えて生意気に口答えも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のたびにお母さんは「あんたたちが
このくらい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もお母さんのおかげよ」といいます。わたしもそう思います。毎日
勉強をしたがらない子供たちを机に向かわせて勉強させることは根気のいることだったと思い
ます。そのおかげでわたしは英語も日本語も韓国語も話せるようになりましたし、勉強もできる
ようになりました。小さいころは叩かれながら育ちました。しかし、あまり記憶に残っていません。
きっと、お母さんが怒っているときに私たちは知らず知らずお母さんの真心をわかっていたの
だと思います。最近は怒ったり叩いたりしてももう聞くような齢は過ぎたと感じたのか、お母さん
もずいぶん柔らかくなってきました。そのかわり、お母さんはわたし達が将来親孝行することを
楽しみにしています。そのときは存分に親孝行してあげたい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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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내 마음 속의 두 오빠
코리아 국제학원 고등부 2 학년
강 유진
“유진아, 창민 오빠가 왔어. 빨리 눈 떠 봐.” 쉬는 시간에 졸고 있던 저를 깨우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저는 눈이 둥그래져서 “응? 어디?”하고 주위를 둘러 봤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재미있어하며 저를 놀립니다. 하지만 저는 창피한
마음보다도 실망이 더 큽니다. 여러분, 제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시겠지요? 맞습니다.
저는 동방신기의 창민 오빠를 좋아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한국사람은 저리 꺼져!”“한국에 돌아가버려!”라는 말에
상처 받은 제 마음을 동방신기의 노래가 달래 주었습니다. 저의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 준 것도 또 읽지도 못했던 한국어를 제가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도
동방신기의 창민 오빠 덕분입니다. 그런 고마운 오빠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저에게는 소중히 생각하는 또 한 사람의 한국 오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수현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수업 시간에 본‘너를 잊지 않을 거야’라는 영화를 통해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2 년
전에 당시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던 수현 오빠와 카메라맨 세키네 씨가 JR
신오쿠보역 플랫폼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함께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살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충격과
의문의 마음으로 저는 인터넷으로 그 때 일과 수현 오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무역학을 공부했던 수현오빠는 한일 교류의 가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그렇구나, 수현 오빠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사는 길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저는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창민 오빠를 생각하면 기쁘고 설레이는 제 마음과는 달리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수현 오빠를 생각하면 제 마음은 무겁고 아파옵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의 두
오빠에게는‘한국과 일본의 가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창민 오빠는 노래를 통해서,
그리고 수현 오빠는 26 살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 숭고한 죽음을 통해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 주었습니다. 창민 오빠의 노래가 제 마음의 위로가 된다면
수현 오빠는 제 마음의 촛불이 되어 저를 밝혀 줍니다. 자신을 불태우고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된 수현 오빠. 그 촛불을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언젠가 저도 한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를 지켜 나가는데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6
韓国語スピーチ部門
心の中の二人のお
二人のお兄
のお兄さん
コリア国際学園高等部
コリア国際学園高等部 2 年
姜 瑜珍
「ゆじん、チャンミンお兄さんが来たよ。早く起きて!」休みの時間に寝ていた私を起こす友
達の声に目を丸くして「うん?どこに?」と周りを見わたしました。そんな私の姿を見て友達は面
白がって私をからかいます。しかし、私は恥ずかしい気持ちよりがっかりする気持ちの方が大き
いです。皆さん、私の好きな人が誰なのか、もうおわかりですよね。そうです。私は東方神起の
チャミンお兄さんが大好きです。
小学校と中学校の時、「韓国人は消えろ!」「韓国へ帰ってしまえ!」と言われ、傷付いた私
の心を東方神起の歌が癒してくれました。私の韓国人としてのプライドを守ってくれたのも、ま
た韓国語を読むことさえできなかった私が一生懸命に韓国語を勉強するようになったのも東方
神起のチャンミンお兄さんのお蔭です。そんなありがたいお兄さんに会えたらどれほど良いで
しょうか?
ところで皆さん、私には大切に思っているもう一人のお兄さんがいます。皆さんはイスヒョン
(李秀賢)という名前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か。私がその名前を知ったのは、授業の時に見た
「あなたを忘れない」という映画を通してです。今から 12 年前に、当時日本で留学をしていたス
ヒョンお兄さんとカメラマンの関根さんが、JR 新大久保駅のホームから線路に転落した人を助
けようとしたのですが、一緒に命を落としたことを知りました。「生きるための別の選択をすること
もできたはずなのに…。」衝撃と疑問がはしり、インターネットでその時の事とスヒョンお兄さん
について調べてみました。韓国の大学では貿易学を勉強していたスヒョンお兄さんは、韓国と
日本の交流の懸け橋になるのが夢だったそうです。「そうか、スヒョンお兄さんは、最後の瞬間
まで一緒に生きる道を諦めようとしなかったのだろう」と気づいた時、私は粛然とした気持ちに
なりました。
チャンミンお兄さんのことを思うと嬉しくてドキドキする私の心とは違って、いくら会いたくても
会えないスヒョンお兄さんのことを思うと私の心は重くなり、痛みます。しかし、私の心の中の二
人のお兄さんには、「韓国と日本の懸け橋」という共通点があります。チャンミンお兄さんは歌を
通して、またスヒョンお兄さんは 26 歳という短い生涯でしたが、その崇高な死を通して、韓国と
日本、両国の人々の心を繋いでくれました。チャンミンお兄さんの歌が私の心の慰めになると
すれば、スヒョンお兄さんは心の中の一本のろうそくの灯りになって私を照らしてくれます。自ら
を燃やし、多くの人々の心の中で消えることのない、一本のろうそくの灯りになったお兄さん。
その灯りをまた他の人と分け合いながら、いつか私も韓国と日本の友好関係を守っていくのに
力になれるように努力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7
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저에게 자신감을!
자신감을
도쿄도립 국제고등학교 1 학년
야나가와 다이키
제가 좋아하는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한국사람은 강상중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은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나셔 현재 동경대학교 교수이신 재일한국인 2 세입니다.
사실은 저에게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까지 아무한테도 말 못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한국사람이고 아버지는
일본사람이지만 자신이 재일한국인 3 세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저에게
전하셨을 때 동시에 “이것은 친구들한테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시대는 아직 차별이 많이 있었던 시대. 아들이 괴로운
경험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어머니로서의 애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초중학교를 지내는 사이에 자연히 만약 제가 이 사실을 밝히면 사이가 좋던
친구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왕따당할까봐 불안이 됐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겁내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제가 아주 사랑하고 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같은 선조 분들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너무 슬펐지만 뭘 하면 좋은지 몰라서 갈등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 3 학년 때, NHK 한일 역사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강상중 교수님을
봤습니다. 그후에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교수님의 처지와 제 처지가 너무 비슷한 점을
알았습니다. 교수님도 중고등학생 시대는 친구들에게 재일한국인이라고 밝히는 것을
겁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수님과 그때의 저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지금
교수님은 민족명을 사용해 한국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당하게 사시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국을
사랑하면서 이 일본사회에서 훌륭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은 너무 부러웠습니다.
드디어 제 마음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면
이제 제가 재일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면서 이제부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모님에게도 말하면 “니가 정한 것이니까”라고 찬성해
주셨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약 1 년간・・・ 한국어 공부도 하면서 매일 바쁜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씩 친구들과 함께 한국 이야기를 하거나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신오쿠보에 가기도 합니다.
제 인생을 바꿔 주신 강상중 교수님・・・ 그런 교수님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8
韓国語スピーチ部門
私に自信を
自信を
東京都立国
東京都立国際高等学
際高等学校 1 年
柳川 大貴
私が好きな、そして私が尊敬する韓国人は姜尚中教授です。教授は日本の熊本県で生ま
れ、現在、東京大学の教授である在日韓国人2世です。
実は私には高校に入るまで誰にも言えないことがありました。それは私の母方の祖父と祖母
が韓国人で、父は日本人であるものの、自分が在日韓国人 3 世だということです。母がこの事
実を私に伝えたとき、同時に「これは友達にも誰にも言ってはいけない」と言いました。両親の
時代はまだ差別がたくさんあった時代。息子がつらい経験をしないようにするための母親とし
ての愛情でした。
そのように小中学校を過ごしていくうちに、自然にもし私がこの事実を明らかにしたら、仲が
良かった友達から敬遠されていじめられるのではないかと不安になりました。
でも、私は何も悪いことをしてないのに何を恐れているのか?そして、それは私がとても愛し
ている祖父と祖母のような先祖の存在も否定していることなのではないかと思い、とても悲しか
ったけれど何をすればいいのかわからなくて葛藤の日々を送っていました。
私が中学 3 年の時、NHK の日韓の歴史番組に出演した姜尚中教授を見ました。その後にイ
ンターネットで調べてみて教授の境遇と私の境遇がとても似ている点を知りました。教授も中高
生時代は友達に在日韓国人だと明かすことを恐れていたそうです。
しかし、今の教授とその時の私には決定的な違いがありました。今、教授は民族名を使って
韓国人だと誇りをもって、堂々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教授は学校で民族教育を受けたことはなかったそうです。それでも韓国を愛しながらこの日
本社会で立派に生きていかれる姿はとてもうらやましかったです。
ついに私の心の中で一つの結論を下しました。それは高校に進学したら、もう私が在日韓
国人だということを隠さず、自信をもってこれからを生きていくということです。これを両親にも言
ったら、「おまえが決めたことだから」と賛成してくれました。
高校に入学して約 1 年・・・ 韓国語の勉強もしながら毎日忙しい高校生活を送っていま
す。時々、友達たちと一緒に韓国の話をしたり、家への帰り道に新大久保に行ったりもします。
私の人生を変えてくれた姜尚中教授・・・そんな教授を尊敬してやまないの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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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청춘은 아프다
오유학원
오유학원 여자고등학교 3 학년
스즈키 레이나
안녕하세요. 저는 스즈키 레이나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조금 쑥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 학년 때까지 유명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면 미래가 보장 되고,
자신의 인생을 대학교에서 정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 학년이 됐을 때 마음속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 ‘대학교에 가는 의미는 무엇인가?’‘나의 꿈은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저는 공부를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기분이었을 때,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어느 대학교 교수님이 쓰신‘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는 책입니다.
저는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샀지만, 책을 읽고 이 책은 나를 위해 쓰인 책이
아닌가?! 하고 놀랐습니다. 책에 쓰인 말 하나하나가 제 가슴을 울리고, 고민하고
있던 저에게 용기와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바닥은
깊지 않다.’‘너가 내린 결정으로 인생을 리드해라.’라는 격려의 메시지는 제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저는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2 주 동안 어학과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수험생에게는 중요한 여름 방학이었지만 저는 새로운
일을 해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첫 해외, 첫 한국.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한국사람들과 KPOP 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등 다양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위해 대학교에 가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저는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아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관계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저는 장기유학을 가는 것과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을 목표로 한국어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18 살이라고 하는 시기에
많이 고민하고 자신을 재검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는
말을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앞으로 저는 한국 유학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
韓国語スピーチ部門
青春はつらい
鷗友学
鷗友学園女子高等学
園女子高等学校 3 年
鈴木 麗菜
こんにちは。
今からお話しする内容は少し照れくさいですが、正直に私の考えを話したいと思います。
私は中学から高校2年まで有名大学に入学することを目標に、一生懸命勉強していました。
良い大学に入学すれば未来が保障されるし、自分の人生は大学で決めれば良いや、と考え
ていました。ですが、高校 3 年になった時、心の中で疑問がわいてきました。「私は何のため
に勉強しているのだろう?」「大学へ行く意味は何だろう?」「私の夢は何だろう?」そう考え始
めた瞬間、私は全く勉強ができ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
そんなモヤモヤした気持ちでいた時、本屋で 1 冊の本を見つけました。それは、韓国にある、
ある大学の教授が書いた「つらいから青春だ」という本です。私はタイトルに惹かれてこの本を
買いましたが、本を読んで、この本は私のために書かれた本ではないか!?と驚きました。本
に書かれた言葉ひとつひとつが私の胸に響き、悩んでいる私に勇気と明るい未来を見る力を
与えてくれました。「思っているほど底は深くない」「君がくだした決定で人生をリードしろ」こう
いった激励のメッセージが私の心を軽くしてくれました。
この本に励まされ、私は去年の夏に韓国で 2 週間、語学や文化を学ぶプログラムに参加し
ました。受験生にとっては大切な夏休みでしたが、私は新しいことをして新しい自分を発見した
かったのでこのプログラムに参加しました。初めての海外。初めての韓国。短い期間でしたが、
韓国語を習ったり、韓国の人と友達になったり、韓国の人と K-POP について話したり、色々な
ことを経験しました。この経験を通して、何のために大学に行くのか悩んでいた私は、大学で
勉強したいことを見つけました。日本と韓国の関係を中心にアジアの関係を勉強したいと思い
ます。
わたしは、長期留学に行くことと、「つらいから青春だ」を書いた教授の講義を直接聴くことを
目標に、韓国語をもっと一生懸命勉強したいと思います。18 歳という時期に大いに悩み、自分
を見つめ直したので「つらいから青春だ」という言葉を体感することができ、私は幸せです。こ
れから私は韓国留学を含め色々なことに挑戦したいと思います。私の話を聞いてくださり、あ
りがとうございます。
11
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나
토요대학부속 우시쿠고등학교 2 학년
타야마 나츠키
안녕하세요. 저는 타야마 나츠키라고 합니다. 한국드라마와 아이돌을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된 엄마와 저는 몇번인가 한국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서울에 갔을 때 남대문 시장 등에서 「짝퉁 가방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저는 몇번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아저씨가 제팔을 당길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싫었습니다. 제가 만약 한국 사람처럼 보이면 말을 걸어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계기로 한국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패션을 따라 했습니다. 제 또래의 한국사람은 옷을 잘 차려 입고도 신발은
운동화를 신습니다. 그리고 옷을 겹쳐서 입지 않고, 심플하게 입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머리를 묶을 때는 느슨하게 묶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람은 친한 사람과 걸을
때, 팔짱을 끼고 걷습니다. 이렇게 겉모습만이라도 한국인처럼 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한국인처럼 보이기위한 노력을 하는 사이에 한국인들의 생활과 습관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남대문시장 짝퉁 아저씨와의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작년 11 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다시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옷은 한국 사람처럼 보이도록
입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걸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별로 한국어를
잘못하는 저로서는 좀 난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성공입니다. 한국 사람처럼
보여지겠다는 처음목표는 달성 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남대문시장 짝퉁 아저씨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국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알게 된 것을 넘어, 이제는 한국사람,
거리분위기, 한국의 식문화 등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지금 제 생활의 반
이상은 한국에 관한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음 목표는 한국어를 열심히 해서,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와는 자주 문자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매일 밤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사이사이 시간을 내서 친절하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학교얘기를 해 주기도 합니다. 공부가 싫지 않냐고 물으면
내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싫지 않다고 합니다. 같은 나이지만 존경할 곳이 많은
친구입니다.
겉모습만 한국사람처럼 꾸미지 말고, 한국 사람을 본 받아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최종 목표는 한국 유학입니다.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상 회화 이상의 수준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저는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그 수준까지 가기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은 노력가이자 자신감에 넘쳐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 되고 싶은 저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이팅! 여러분, 오늘 제모습 어때요? 한국
사람처럼 보입니까? 끝까지 제 얘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韓国語スピーチ部門
韓国人になりたい私
になりたい私
東洋大学
東洋大学附属牛久高等学
牛久高等学校 2 年
田山 夏希
こんにちは。私は田山夏希といいます。
韓国のドラマやアイドルにはまった母と私は何回か二人で韓国旅行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みなさん!みなさんはソウルへ旅行に行ったときに、南大門市場などで「偽物のかばんある
よ。」と声を掛けられたことがありますか?私は何度もあります。しつこい時には腕をひっぱられ
たりすることもありました。それがすごく嫌でした。だから韓国人に見えれば声を掛けられなくな
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した。私はそれをきっかけに韓国人に見えるための研究を始めました。
まずファッションを真似しました。私と同じ世代の韓国人は、服が着飾っていても靴はスニー
カーです。そして重ね着はせずに、シンプルに着こなし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髪を結ぶ時
は緩くルーズに結びます。そして韓国人は、親しい人と歩くとき、腕を組んで歩きます。このよう
にして外見だけでも韓国人に見られるように努力しました。韓国人に成りきるための努力をする
うちに韓国人の生活や習慣が少しずつわ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いざ、出撃です。南大門のおじちゃんたちとの対決の日が来ました。昨年 11 月にソウルへ
行き、ドキドキする気持ちを抑えながら再び南大門市場を訪れました。もちろん服装は韓国人
に見えるようにしました。そして母と腕を組んで歩きました。すると見事なことに、声を掛けられ
ませんでした。反対に韓国語で話しかけられることがありました。あまり韓国語が上手でない私
にはちょっと困ることになりました。しかし、大成功です。韓国人に見られたいという私の最初の
目標は達成できました。今は南大門のおじちゃんに感謝したいです。それをきっかけに今まで
とは違う韓国を知ることができたからです。知るだけで終わらず、人、街の雰囲気、韓国の食文
化など韓国の魅力にとりつかれてしまいました。今では私の生活の半分以上は韓国のことを考
えています。できることなら韓国人になりたいと思うくらいです。
次の目標は、韓国語を上手に話せるようになり、たくさんの韓国人の友達を作ることです。今
はインターネットで知り合った韓国人の友人がいます。彼女は毎日夜遅くまで勉強していて、
勉強の合間に、とても親切に、韓国語を教えてくれたり、学校の様子を話してくれます。勉強は
いやではないのか尋ねると自分のためだからいやではないと言います。同世代なのに尊敬で
きるところがたくさんある友達です。
そこで私は気づきました!これからは、外見だけ韓国人に近づけても駄目だ!韓国人を見
習って、私ももっと勉強しなくてはならないと思います。最終目標は韓国留学です。韓国の大
学で、韓国人の友達と一緒に勉強するためには韓国語は日常会話以上のレベルが必要にな
ります。今の私は、韓国語が下手なので、私がそのレベルに達するにはかなりの努力が必要
だと思います。しかし、私にはできる自信があります。なぜなら、韓国人は努力家で自信にあふ
れているから、韓国人になりたい私ならできるはずです。頑張ります。
みなさん、今日の私はいかがですか?韓国人に見えますか?
最後まで、私の話を聞いてくだ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13
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부터
안녕하세요 부터
가나가와 종합고등학교 3 학년
카와키타 칸나
"안녕하세요." 이 말은 처음으로 외운 한국어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을
맞이하였을 때 저희 집에 한국에서 한 소녀가 왔습니다. 그 때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외운 말이 바로 안녕하세요라는 말입니다. 그녀를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큰 가방을 가진 그녀가 저희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아직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저는 서양인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하고 똑같은 외모에
조금은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공항에 가는 길에 외운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지도 못하고 그녀와 같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의 저와
동갑인 18 살로 혼자서 유학을 한다는 것이 아주 불안했을 겁니다. 만약 그때 제가
그녀에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녀는 긴장이 많이
풀렸었겠지요. 그 날로부터 2년을 우리는 마치 친자매처럼 지냈고 그녀로부터
한국어도 배웠습니다. 배운 한국어는 간단한 말이었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저에게는 세계를 잇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불어도 배우고 유학도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유럽의
국가들은 역사상 전쟁이 있었기에 사이가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어떻게 그 나라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이웃 나라
말도 모르고 어떻게 교류를 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배우고 이해
해야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 경험을 기회로 귀국한 저는 한국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나라인데 지금까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한국말을 공부하면 할수록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을 더 알고 싶어졌고 한국 매력을 느꼈습니다.
작년 여름 한국에 갔습니다. 우리 집에 왔던 그녀와 일본어를 모르는 그녀의
동생들이 저에게 한국을 열심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저는 더욱더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어를 더 유창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말로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국제교류의 기본이 아닐까요?
일본에 돌아온 몇 개월 후에 일본어를 배우러 그녀의 동생이 저희 집에 왔습니다.
이렇게 작은 국제교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저도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14
韓国語スピーチ部門
アンニョンハセヨから
神奈川県立神奈川
神奈川県立神奈川総
神奈川総合高等学
高等学校 3 年
川北 栞奈
「アンニョンハセヨ」。これは私が初めて覚えた韓国語です。小学 3 年生の夏休みを迎えた
頃、我が家に韓国人の女の子がやって来ました。その時、空港に行く車の中で覚えた言葉が
まさに「アンニョンハセヨ」という言葉です。彼女を空港で待っていると大きな荷物を持った彼女
が私たちのもとへと近づいて来ました。まだ韓国がどこにあるかも知らなかった私は、西洋人の
姿を想像していたために、日本人と同じようなその姿に少しがっかりしてしまったようでした。そ
れからというもの、空港へ行く車の中で覚えた「アンニョンハセヨ」という一言も話しかけることが
できないまま彼女と共に家へと帰らなくてはなりませんでした。今考えてみれば、今の私と同じ
18歳で一人、留学することはとても不安だったはずです。もしもあの時、私が彼女に笑顔で
「アンニョンハセヨ」と言えていたら、きっと彼女の緊張は大いに和らいだことでしょう。その日か
ら 2 年を私たちはまるで兄妹のように過ごし、彼女から韓国語も教わりました。習った韓国語は
簡単な言葉でしたが、当時の私にとってはとても新鮮で、楽しい思い出として残っています。
今の私には世界をつなぐ人になるという夢があります。その夢を叶えるために、フランス語を
学び留学もしました。そして、そこでフランス人が英語、スペイン語、ドイツ語を流暢に使う姿を
見てとても驚きました。なぜなら、ヨーロッパの国々は歴史上、戦争があったために仲が悪いも
のなのだと思っていたからです。ある日、友達にどうしてその国の言葉を喋れるのかと尋ねまし
た。するとその答えは、隣の国の言葉も知らないでどうやって互いに交流し、理解し合えるのか
というものでした。私は強い衝撃を受け、新しい時代を創ってゆく私たちが互いに学び合い、
理解し合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と感じました。
それを機に、日本に帰った私は韓国語を再び勉強しはじめました。隣の国なのに今まで知
らないことが多すぎて、韓国語を勉強すればするほど、文化や人々をより知りたくなり、韓国の
魅力を感じました。
去年の夏、私は韓国を訪れました。我が家に来ていた彼女が案内してくれ、日本語のわか
らない彼女の妹弟までもが私のために韓国を一生懸命案内してくれました。私はますます韓
国が大好きになり、韓国語をもっと流暢に話したくなりました。自分の言葉で自分の気持ちを
表現できたらいいなと思いました。このような気持ちが国際交流の基本ではないでしょうか?
日本へ帰って来た数ヵ月後に日本語を学ぶため彼女の弟が我が家にやって来ました。この
ように小さな国際交流はずっと続いています。そして、何よりも今回は私も笑ってこう言うことが
できました。「アンニョンハセヨ、オレンマニエ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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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그를 만날 날까지
아이치현립
치구사고등학교
고등학교 2 학년
아이치현립 치구사
시매타 유나
저는 지금 연애중입니다. 그것도 제 마음을 쉽게 전할 수 없는 사람과 말입니다. 그는
K 팝 스타거든요. 그를 처음 본 건 우연히 켠 텔레비전. “와 멋지다!” 하는 탄성과 함께
저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던 제
마음을 아는 듯이 이런 말을 하지 않겠어요? 어느 한쪽이 100 퍼센트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정답이지. 50 대 50. 고르기 힘드니까 선택이라고 하는 거야. 어쩌겠어. 선택한 다음
뒤돌아보지 말고 그 50 을 100 으로 만들어야지 않겠어? 열심히 해서 그 길이 맞았다고
자신에게 증명해야 되지 않겠어?
꼭 저에게 하는 말 같았어요. 물론 그 당시의 저는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몰랐습니다.
자막으로 보는데도 그 대사가 마음 속 깊이 와닿아 드라마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드라마 대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상한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저는 마음을 빼앗기고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그의 름은 옥택연. 2PM 중의 한 명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 한류붐이 일어나 텔레비전만 켜면‘욘사마, 욘사마!’ 하며
따라다니는 어머니들… 그 때까지 저는 한국드라마는 어머니들이나 보는 드라마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드림하이’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한국드라마에 빠져서 제
생활의 대부분을 한국드라마와 2PM 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옥택연을 만날 날을 위해 혼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녹화한
드라마 중에서 좋아하는 대사를 되풀이하면서 소리부터 외우고, 그 다음에 소리만으로는
뜻을 잘 모르니까 노래가사를 보면서 단어를 외우고, 그 사이에 한국말 교재나 참고서를
보면서 글자를 익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작년 4 월부터 시작한 NHK 한글강좌는
2PM 입니다. 좋아야 더 잘한다는 말처럼 저는 전생에 한국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말
실력이 늘어가는 게 너무 기뻤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제 2 외국어로 한국말을 한국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혼자
독학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다시 배워보니까 발음도 어렵고 문법도 배울 것이 많지만
배우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알고
싶어서 한글 검정 시험에도 도전했습니다. 다행히 4 급에 붙었습니다. 또 그를 더욱 알고
싶어서 콘서트에도 갔습니다. 콘서트에서 열심히 일본말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해야지’하고 다짐을 하고 순간적으로 나오는 그의 한국말을
알아듣는 제 모습이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2PM 콘서트에 가면 그들이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는 것.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역사의 교훈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면 유학을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꿈이지만
한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한국에서 일본과 한국 모두를 잘 아는 사람으로
옥택연을 만날 날을 꿈꾸며 그 날까지 화이팅!
16
韓国語スピーチ部門
彼に出会う日まで
愛知県立千種高等学
愛知県立千種高等学校 2 年
〆田 祐奈
私は恋愛中です。それも自分の思いが簡単に伝えられる相手ではありません。彼は K-POP
スターだから。彼を初めて見たのはたまたま付けたテレビ。「あっ!かっこいい~」という歓声と
同時にテレビの画面を見入ってしまいました。ちょうど、進路のことでいろいろ悩んでいた私を
まるで知っているかのようにこんなことを言うではありませんか。
「100%だったら選択じゃなく正解だ。50 対 50。選びづらいから選択なんだ。だから悩むん
だ。でも、選んだあとはその 50 を 100 にするんだ。正しい道だったことを自分自身に頑張っ
て証明しないと」
まるで私に語りかけているようでした。もちろん、このときの私はまだ韓国語を一言も知りませ
んでした。でも字幕で見ていても、その韓国語が自然に身体の中に染み込んできて、ドラマを
見ながら自分でも知らず知らずボロボロと泣いてしまいました。皆さんはそんな経験ありません
か?ドラマのセリフだとわかっていても優しく語りかける彼の声・表情に私は心を奪われ、一気
に恋に落ちてしまいました。そうです。彼の名前は옥택연、2PM の 1 人です。
何年か前から日本が韓流ブームとなり、テレビをつければ「ヨン様!ヨン様!」と追いかける
お母さん達の姿。私の中で韓国ドラマはお母さん達が見るドラマだと見向きもしなかったのに、
今では『ドリームハイ』から始まり色々な韓国ドラマにはまり、私の生活のほとんどは韓国ドラマ
と 2PM 一色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いつか옥택연に会う日のために韓国語を独学で勉強し始めました。まず、録画した好きなド
ラマのセリフをリピートしながら音から覚え、次に音だけでは意味がわからないので歌の歌詞を
見て歌を聞きながら単語を覚え、その間にハングルのドリルや参考書で文字に慣れていきまし
た。皆さんもご存じでしょうが今年の4月からのNHKハングル講座は 2PMです。「好きこそもの
の上手あれ」とは言いますが、私の前世は韓国人?と思うくらい、韓国語がうまくなっていくの
が嬉しかったです。
高校に入学して第二外国語として、韓国語を韓国人の先生に学んでいます。独学だったの
で、改めてもう一度学ぶと発音の難しさ、文法など学ぶことはたくさんありますが、学ぶことが楽
しくて仕方ありません。だから、自分の語学力がどのくらいのものなのか、ハングル検定にも挑
戦しました。さいわい四級に合格しました。
また、彼についてもっと知りたいと思い、コンサートにも出かけました。コンサートの中で一生
懸命に話してくれる日本語を聞き私も韓国語を頑張ろうと思いますし、会話の合間に出るちょ
っとした韓国語がわかる自分が嬉しくもあり、誇らしいです。
2PM のコンサートでは彼らがとても自分たち国を愛していると感じることがあります。それは
私たち日本人に欠けているところだとも思います。人を知ることは歴史や文化を知ること。特に
韓国と日本には忘れてはならない歴史があります。若い人たちが歴史の教訓から未来をつく
っていくことが大事だと思います。将来は大学に入ってから韓国語を学び留学がしたいです。
ありきたりですが、何か韓国で仕事をしたいです。いつか韓国で、日本のことも韓国のこともよ
くわかっている人として옥택연に出逢える日を夢見て、その日までファイティ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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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ムホ・アシアナ杯
「話してみよう韓国語」高校生大会
내겐 너무 매운 한국
가나가와현립 가와사키고등학교 1 학년
스즈키 치하루
저는 중학교 때 K-POP 을 좋아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 후, 한국의 문화, 그리고 한국어 등 한국의 다양한 매력에 빠지게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한국에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음식입니다. 모두들 한국 음식이
맛있다고 하지만,사실 저는 한국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양이 많고
자극적이고 너무 맵다는 인상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세 끼나 먹어야 하는
중요한 식사가 입에 맞지 않다니, 유학을 가면 한국 생활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한국에서 살게 됐을 때 한국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한국음식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김치를 먹었을 때는 “왜 이렇게 매운 것을 맛있다고 하면서 먹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순두부찌개를 먹었을 때는 너무 매워서 코피가 났을 정도였습니다. 그
가게에서 가장 순한 맛을 시켰는데, 코피가 나다니. 정말 제 몸에는 매운 음식이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V 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방송을 봤습니다. 한국의 전통 음식에는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어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특히 김치에는
유산균이 들어 있어, 장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매운 음식은 신진대사를 좋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한국 음식에 대한 인상이 조금 좋아져서 다시 한 번 김치를
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역시 맵기는 매웠지만 한국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된 탓인지 예전보다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한국 음식 중에는 맵지 않고 담백해서, 제 입에 잘 맞는 음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한국 음식 중에 호떡, 시루떡, 칼국수, 해물파전 등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집에서 잡채나 전 등 간단한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아직
너무 매운 것은 못 먹지만,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되면서 한국의 매력을 또 하나 알게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게 되면, 더 많은 한국 음식들도 먹어 보고, 또 한국 친구들에게도 일본 음식의
매력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음식에 대한 제 인상이 바뀐 것처럼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한국과 일본에 서로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18
韓国語スピーチ部門
私にはとてもカライ韓
にはとてもカライ韓国
神奈川県立川崎高等学
神奈川県立川崎高等学校 1 学年
鈴木 千晴
中学生の時、K-POP を好きになったことをきっかけに韓国という国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りま
した。その後、韓国の文化、そして韓国語など韓国の多様な魅力にはまり、高校を卒業したら
韓国へ留学に行きたいという考えになりました。
ですがたったひとつ、悩みがありました。食べ物です。みんなは韓国の食べ物は美味しいと
言うけれど、実は私は韓国の食べ物はそれほど好き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量が多くて、刺激
的で、とても辛いという印象しかなかったためです。一日に三食も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大切
な食事が口に合わないなんて、留学をするとしたら韓国生活をどうするのか心配になりました。
それで、後に韓国で住むことになった時、韓国生活を楽しく送りたいという一心で韓国の食
べ物に慣れるための努力を始めました。
初めてキムチを食べたときは「なんでこんなに辛いものを美味しいと言いながら食べるんだ
ろう?」と思いました。純豆腐鍋を食べた時はとても辛くて鼻血が出たほどでした。そのお店で
一番薄い味を頼んだのに鼻血が出るなんて、本当に私の体には辛い食べ物が合わないようで
した。
そんなある日、TV で韓国の食べ物ついての放送を見ました。韓国の伝統料理には昔の人
達の知恵が詰まっていて体に良いという内容だったんですが、特にキムチには乳酸菌が入っ
ていて腸を綺麗にしてくれ、辛い食べ物は新陳代謝を良くしてくれると言っていました。それを
見て、韓国の食べ物に対する印象が少し良くなり、もう一度キムチを食べて見ることにしました。
やはり辛いことは辛いけど、韓国の食べ物が体に良いという話を聞いたせいか以前よりおいし
く感じました。
その後、韓国の食べ物の中には辛くなく淡白で私の口に合う食べ物もあると知りました。私
は韓国の食べ物の中でホットク、シルトッ、カルグクス、海鮮チヂミなどが好きです。
最近は家でチャプチェやチヂミなど簡単な韓国の食べ物を作ってみたりもします。まだ辛す
ぎるものは食べませんが、韓国の食べ物を好きになると同時にまた一つ韓国の魅力を知ること
ができたようで嬉しいです。
一緒に食事をするとお互いをよく理解できると思います。韓国に留学をすることになったら、
もっとたくさん韓国の食べ物も食べてみて、また韓国の友達に日本の食べ物の魅力も教えて
あげ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韓国の食べ物に対する私の印象が変わったように、韓国と日本
がお互いをもっと理解できたら良いと思います。そして、将来は韓国と日本にお互いの魅力を
知らせる仕事をしたいと考え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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