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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진행 순서 - 센다이한국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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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진행 순서 - 센다이한국교육원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대회 진행 순서
제 1부 개회식
1. 개 회
2. 국민의례
3. 대회장 인사
4. 환영사 및 축사·격려사
5. 내빈 소개
제 2부 우리말 이야기 대회
1. 심사위원 소개
2. 심사기준 안내
3. 대회경연(일본학교부문·한국학교부문)
제 3부 축하 공연
1. 태권도 공연
2. 사물놀이 공연
제 4부 심사결과 발표 및 시상식
1. 심사평(심사위원장)
2. 심사결과 발표
3. 시상식
4. 폐 회
3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1. 목 적
가. 재일 한국인 동포 학생들의 우리말 구사능력 향상과 성취동기 부여
나. 민족교육의 중요성 및 한국어에 대한 관심 제고
다. 재일 한국인 동포 학생들의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2. 실행기관
가. 주최 : (공익재단법인)한국교육재단
나. 주관 : 센다이한국교육원,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미야기현지방본부
다. 후원 : 대한민국 교육부,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주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재일본대한민국민단중앙본부
3. 세부 대회 내용
가. 개최 일시 : 2016년 6월 25일(토) 13:00~
나. 개최 장소 : 미야기민단 6층 강당
980-0014 宮城県仙台市青葉区本町1-5-34
다. 대회 주제
1) 일본사회에서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
2) 자신이 경험하고 새롭게 발견한 한국에 관한 이야기
3) 우리말을 배우면서 얻게 된 긍지와 자부심에 관한 이야기
4)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
라. 발표시간 및 원고 분량 : 3분 ~ 5분 이내(원고지 10매 이내)
마. 참가 자격 : 재외 한국인으로서 재일 한국인 학교, 또는 일본학교에 재학 중인 초·중·고등학생
※ 5세 이후, 1년이상 한국거주 또는 한국 내의 학교에 1년이상 재학하였던 자는 불가
5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4. 심사기준
1) 내 용(참신성·창의성·진실성) : 30점
2) 어 휘(구성·표현·적절도) : 20점
3) 발 음(활음·유음·연음·처리도) : 20점
4) 발 성(고저·장단·강약자연성) : 20점
5) 태 도(시선·암기·집중·장악도) : 10점
* 원고 암기 발표를 원칙으로 함
* 시간(초등부 4분, 중등부 5분)
5. 시 상
부 문
등급
부별
초 등
중 등
1
대 상
훈 격
주일본대한민국대사상
금 상
1
1
중앙본부민단장상
은 상
2
2
미야기민단장상
동 상
3
3
주일한국교육원원장
협의회장상
일본학교
대 상
주일본대한민국대사상
1
금 상
1
1
한국교육재단이사장상
은 상
2
2
센다이총영사상
동 상
3
3
주일한국교육원원장
협의회장상
한국학교
※ 심사결과에 따라 수상 등급별 인원이 증감될 수 있음
6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제1부
1. 대회사 -센다이한국교육원장 원장 하 태 성
2. 환영사 -(공익재단법인) 한국교육재단 이사장 서 동 호
주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 양 계 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미야기현지방본부 단장 김 정 욱
3. 축 사 -재일본대한민국민단중앙본부장 오 공 태
4. 격려사 -주일본국대한민국대사관 특명전권대사 유 흥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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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대 회 사
센다이한국교육원
원장 하 태 성
여러분 반갑습니다.
멀리 센다이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1995년 시작된 대회가 올해로 22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대회를 주최하여 주신 한국교육재단 서동호 이사장님,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재일본대한민국민단중앙민단 오공태 단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센다이에서 대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양계화 센다이총영사님, 본 대회를 같이
준비하고 성원해 주신 김정욱 단장님을 비롯한 미야기민단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특히, 대회를 개최하기에 다소 부족한 여건이라 망설이고 있는 저에게‘적극 밀어 드릴 테니까 한 번 해
보세요.’라며 용기를 주신 전병준 前 단장님.
모두의 덕분에 오늘 이 대회를 설레임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그동안 한국학교에서 또는 주말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틈틈이 배웠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배움의 시간이었지만 스스로 익히고 또 익혀서 오늘 자신의 소중한 경험과 생각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노력하고 도전하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을 크게 칭찬하고 또 응원합니다.
가족들 앞에서 발표한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해 주십시오.
이 대회를 계기로 훌쩍 자라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말 공부에 정진해 주기를 기대하며 센다이 여행이 특별하고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응원을 위해 자리를 같이 해 주신 선생님과 학부모님,대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조언과 성원을 해
주신 주일본한국교육원장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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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大 会 辞
仙台韓国教育院
院長 河 泰 成
皆様、こんにちは
遠路はるばる仙台までお越し頂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1995年に始まった本大会が今年で22回目を迎えることになりました。
大会を主催してくださった(公益財団法人)韓国教育財団理事長 徐東湖 様、
支援してくださった在日本大韓民国民団中央本部 団長 呉 公太 様!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そして仙台で大会が開かれるよう支え励ましてくださった駐仙台大韓民国総領事 梁桂和 様、本大会
のため一緒に準備しながら声援を送って下さった在日本大韓民国民団宮城県地方本部 団長 金政郁
様をはじめとする宮城民団関係者の皆様!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特に、大会を開催することに多少不安で迷っている時、
「積極的に後押ししますので、一度やって見
てください。」と勇気付けしてくださった 民団宮城 前会長 田炳 樽 様。
このような多くの方々の声援を賜りにより胸膨らむ喜びを持って、本日の大会を準備しました。
もう一度深く感謝を申し上げます。
学生の皆様!
皆さんは、これまで韓国学校や週末のハングル学校で韓国語を学んできました。非常に少ない時間
であっても、自ら学びつつ今日に至るまでの貴重な経験や想いを発表するでしょう。
努力しながら挑戦する皆さんを誇りに思います。
大いに皆さんを賞賛します、そして応援します。
家族の前で発表するのだと思い、落ち着いてお話しください。
この大会を機にふっと成長している自分に出会えると思います。
そして、これからも韓国語の勉強に励むことを期待し、仙台での旅が特別で楽しい思い出になりま
すようお祈りします。
最後に応援にいらっしゃった先生と保護者の皆様、そして大会の初めから最後までアドバイスとご
声援を送って下さった駐日本韓国教育院長の皆様にも感謝を申し上げ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9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환 영 사 「우리 말」은 우리의 자랑
(공익재단법인) 한국교육재단
이사장 서 동 호
우리 말 이야기대회의 개최를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날을 위해 많은 연습을 하신 출장자 여러분, 그리고 출장자를 위해 많은 애정을 가지며 대회준비를 해
주신 관계자 분, 대회 당일은 그 동안 준비하신 성과가 유감없이 발휘되기를 기대합니다.
출장하시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고 사랑스럽게 우리 말을 구사하시는 분은 과연 누구의 한국말
일까요? 아마도 여러분의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하실거라 짐작합니다만 저희 나이가 되면 고향 사투리를
섞어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나 부모님, 자주 집에 찾아오시는 친척분 등 선배님 세대께서 하신 한국말이
우리 말이라고 부르기에 가장 온유함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심지어 우리 말 억양 섞인 일본어에까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 말이
갖는 우아함과 따뜻함이 거기서도 느껴지고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의 깊이도 함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희는 일본이라는 조국외의 땅에서 일상적으로 일본어를 사용하며 한편으로 조상의 언어인
한국어를 배우고 사랑하며 자부심을 갖고 특별한 애착으로 우리 말이라고 호칭하여 나날의 생활을 지내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한국어 학습의 성과를 겨루는 오늘과 같은 대회를 매년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재일한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어에 대한 애착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말하고, 생각하고, 혹은
독서를 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언어임은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애착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말입니다.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조상의 역사나 전통, 눈물과 웃음이 가득 실린 언어가 바로 우리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 외에 그런 훌륭한 언어를 갖고 사랑하며 배울 수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존재입니다. 훌륭한
일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쟁이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더욱 더 욕심을 내서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10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歓 迎 辞
「ウリマル」は私たちの誇り
(公益財団法人) 韓国教育財団
理事長 徐 東 湖
ウリマルイヤギ大会の開催を心からお喜び申し上げます。
そして今日のために沢山の練習を重ねた出場者の皆さん、さらには、出場する学生さんたちのた
めに愛情を注ぎつつ大会開催の準備を進めてこられた事務方の皆さん、きょうはその成果を思う
存分に発揮なされますことを期待してやみません。
さて、出場者の皆さんにとって最も身近で愛すべきウリマルといったら、はたしてどなたが話す
韓国語でしょうか。きっと皆さんのご両親もそうではないかなと想像されるのですが、私どもの
年齢ともなると、故郷なまりの混じった祖父母や両親、家に出入りされた親しい小父さん小母さ
んら、先輩世代が話す韓国語に、いかにもウリマルと呼ぶに相応しい温かみを感じます。
例えば、ウリマルに染まりかけた韓国語なまりの日本語にまで親しみを覚えてしまうのは私ひと
りではないと思います。ウリマルの持つ優しさや温かみまでをもそこから嗅ぎとり、ウリナラ特
有の情の深さまでをも合わせて感じ取ることができるせいでしょう。
歳月が流れて、私たちは日本という祖国以外の地で、生活語に日本語を使いつつ、一方で父祖の
言葉である韓国語を学び、愛し、誇りをこめた特別な思いでウリマルと呼びつつ、日々の生活を
営んでいます。のみならず、韓国語学習の成果を競う、きょうの大会のような行事までをも毎年
続けてきています。
私たち在日韓国人にとって日本語への愛着は否定すべくもありません。自由に語り、考え、ある
いは読書をする上で、欠かすことのできない言葉であるというのは紛れもない事実です。
しかし私たちにはその他にもうひとつ、愛してやまない言葉があります。それこそがウリマルで
す。単純なコミュニケーションツールとしてだけではなく、父祖の歴史や思いの丈、涙や笑いが
ぎっしりと詰まった言葉、それがウリマルではないでしょうか。
日本語以外にそんな素晴らしい言葉を持ち、愛し、学べる私たちは、何と幸福な存在でしょう。
素敵なことを追求するのですから、ここでは欲張りという表現は適切ではないでしょう。皆さ
ん、もっともっと欲張って他人がうらやむほどに幸せになりましょう。
今日は、皆さんが話すウリマルを、そんな気持ちでしっかりと心にとどめつつ、声援を送りたい
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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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환 영 사
주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 양 계 화
제22회 재일한국인학생 우리말 이야기 대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국대회가 이곳 센다이에서
개최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대회에 참가한 학생 여러분들께도 응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말과 글을 배우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기쁩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익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말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여러분들은 앞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큰 인재이며 대한민국의 자산입니다.
이번 우리말 이야기 대회를 통해 여러분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한층 더 강해
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앞으로 한국어 공부를 꾸준히 이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금번 대회가 여러분이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겨루고, 좋은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기원하며, 대회를 위해 수고해주신 교육원 등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12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歓 迎 辞
駐仙台大韓民国総領事館
総領事 梁 桂 和
第22回在日韓国人学生韓国語スピーチ大会の開催を心よりお祝い申し上げます。全国大
会がここ仙台で開催されることを嬉しく思います。また、大会に参加する学生の皆様にも激
励の言葉を送ります。
日本で生活しながらも韓国語とハングルを学ぼうとする意思と情熱を持っていらっしゃ
る学生の皆様にお会いする機会を得たことを嬉しく思っています。言語を学ぶということ
は単純に言葉を話せるということではなく、その国の精神と文化を身につけるということ
でもあります。
韓国語を学ぶことで祖国をより深く理解する機会を得た皆様は、これから韓国と日本の両
国をつなぐ架け橋の役割をする大事な人材であり、大韓民国の財産です。
今回の韓国語スピーチ大会を通じて皆様の韓国に対する愛情と韓国人としての誇りがよ
り一層深ま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また、これからも韓国語学習をこつこつと続けていく
きっかけとなれば幸いです。
今大会が皆様が磨いてこられた韓国語の実力を競いあい、そして素晴らしい友人に出会い
友情を分かち合う場とな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結びに今大会開催のためご尽力された教育院等関係者の皆様に感謝申し上げます。
13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환 영 사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미야기현 지방본부
단장 김 정 욱
이번 제 22회 재일본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개최 준비를 위해 애쓰신 하태성 센다이한국교육장
및 관계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5년째인 올해, 전국에서 이렇게
우리말이야기대회를 위해 숲의 도시 센다이에 오신 것을 대단히 기쁘게 여깁니다. 멀리서 참석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리며, 한국민단 미야기현 지방본부 대표로서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센다이에서도 과거 긴키지역과 중앙지역에서 열린 우리말이야기대회에 출전한 학생들도 몇 명 있어,
전국 최고의 한국어 실력의 높은 장벽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전국의 한국학교, 한국교육원, 민단관계자
분들의 지도로 보다 수준 높은 한국인학생들이 배출되고 있어, 한국어실력향상에 도전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저희 민단미야기에서도 차세대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한국회관을 이용하여 작년부터 [한글학교미야기]
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어, 한국문화는 미야기민단 약 70년의 역사 속에서 차세대육성사업으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신규정주자세대를 포함한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폭넓게 연령층을 대상으로 연령별, 수준별
한국어교육을 실시하며 시대에 부응하는 글로벌 차세대육성사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문화
면에서도 태권도와 장구를 배우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민단행사에 어린이들이 발표할 기회를 제공하여
의욕적으로 연습에 참여하는 등 과소지역의 특성을 살리며 즐겁게[한글학교미야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행사를 위해 [한글학교미야기]의 어린이들이 연습한 장구 연주와 태권도 시범이 있을 예정이오
니 느긋하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민단미야기 부인회에서는 맛있는 한국 떡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꼭 맛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전국에서 선발된 우수한 재일동포 학생 여러분이, 평소에 연습한 성과를 발휘하는 대회입니다.
한국에 긍지를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은 향후 한일의 가교역할을 담당할 중요한 인재들입니다.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각자 준비한 변론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끝으로 교육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 출전자 여러분의 보다 나은 발전과 대회장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 여러분의 건승과 번영을 기원드립니다. 다시한번 출전자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며 인사에
갈음하겠습니다.
14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挨
拶
在日本大韓民国民団宮城県地方本部
団長 金 政 郁
この度、
第22回在日韓国人学生ウリマルイヤギ大会の開催にあたり、
ご準備のためにご苦労さ
れました河泰成仙台韓国教育院長及び関係者皆様に対し改めて敬意を表します。
東日本大震災
から5年目の今年、
全国からこのようにウリマルイヤギ大会を通じて杜の都仙台に御出で頂きま
すこと民団宮城を代表し大変嬉しく遠方よりお出で下さいました皆様に感謝を申しあげると共
に大歓迎する次第でございます。
さて仙台からも過去において近畿や中央で行われたウリマルイヤギ大会に出場したオリニ達
も数名おり、
全国韓国語トップレベルの厚い壁を経験しております。
全国の韓国教育院、
民団関
係者のご指導によりレベルの高い韓国人学生が輩出され、
韓国語上達に挑戦できる絶好の機会
になっております。
民団宮城においてはこの韓国会館を利用し次世代育成事業の一環としてハングル学校宮城を
去年より立ち上げました。
韓国語、
韓国語文化は宮城民団約70年の歴史の中で次世代育成事業と
して受け継がれてきましたが、
新規定住者世帯を含めた幼稚園から高校生まで幅広い年齢とレ
ベルに別れた韓国語講座を実現させて時代に応じたグローバルな次世代育成事業に取り組んで
います。
また韓国文化においてもテッコンド-やチャンゴを学び韓国語のみならず民団事業では
子供たちの韓国文化を発表する機会をつくり、
意欲的に練習も継続し過疎地域の特性を生かし
ながらも楽しくハングル学校宮城を運営しております。
本日、
この日の為に練習しましたハング
ル学校宮城の子供たちのチャンゴ演奏、
テッコンド-演舞を披露しますのでゆっくりとご鑑賞下さ
い。
また宮城婦人会から美味しい韓国餅のおもてなしがありますのでお楽しみにご賞味下さい。
さて、
ここにいらっしゃる皆様は全国から選抜された優秀な在日同胞学生で、
日頃の練習の成
果を発揮される大会となります。
韓国に自負心をもち熱心に勉強されている皆さんが今後の韓
日の架け橋的役割を担う大事な役目を果たす人材であります。
緊張せず、
最善を尽くされ思い思
いの弁論主張を下さいますよう心より応援をしております。
今後も院長をはじめとする関係者の皆様、
出場者の皆様の更なる発展と会場にいらっしゃる
全てのご家族皆様の益々のご健勝とご繁栄をご祈念申し上げ、
出場者の皆様に改めてエールを
送りながら私の挨拶とさせていただきます。
15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축 사
재일본대한민국중앙본부
단장 오 공 태
「제 22회 재일한국인학생 우리말 이야기대회」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본 대회를 주최한 한국교육재단 및 주관해 주신 센다이 한국교육원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재일한국인 학생들의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꾸고 한국과 일본의 가교적인 역할을 책임질 인재로
성장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뜻 깊은 대회에 참가해 주신 여러분에게 환영과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언어는 사람만이 가진 독특하고 신비로운 능력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언어를 가지지 않은
경우가 없으며 무엇보다 언어는 삶과 밀착되어 있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들여다 볼 수도 있습니다.
수천개에 달한다는 언어 중에서 우리말은 세계에서 우수한 언어 열다섯 안에 들며 한글은 언어학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과학적이고 훌륭한 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한민족이 세계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우리말을 가꾸고 지켜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재일동포가 우리말을 학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말과
글은 한민족의 얼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통로이며 우리문화의 뿌리를 터득하는 데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하여 그 우수성을 알리는 한 사람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본단은 올해 창단 70주년을 맞이합니다.
70년의 긴 길을 걸어 오면서 민족차별의 역경 속에서 재일동포의 생활권 향상을 위해 투쟁을 하고 한편
으로는 배움의 터를 만들어 민족교육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민족학교를 세워 각 지부에서 우리말교실을
운영하는 등 재일동포의 민족적 주체성과 한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견지하기 위한 활동에도 힘써왔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말 사용 습관화 권장에 노력을 할 것 입니다.
여러분께서 이번 대회에서 평소에 쌓아 온 학습 성과를 충분히 발휘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동시에 그 자세가 재일동포 사회에 있어서 우리말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을 기원하
면서 축사로 갈음합니다.
16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祝
辞
在日本大韓民国民団中央本部
団長 呉 公 太
「第22回在日韓国人学生ウリマル・イヤギ大会」
の開催、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本大会の主催者である韓国教育財団、
また主管された仙台韓国教育院、
および関係者の皆様に
敬意を表します
それから、
在日韓国人学生の韓民族としての正体性を育み、
将来韓国と日本の架け橋となる人
材としての契機になるこの意味ある大会に参加される皆様に、
歓迎と激励の拍手を送ります。
言語は人間のみが持つ独特で神秘的な能力と言われています。
地球上にいるすべての人類は言葉
を持ち、
その言葉は何より生活と密着していて、
その国の文化や歴史を垣間見ることもできます。
言語の種類が数千個にも及ぶと言われている中で、
ウリマルは世界の最も優れた言語として十五
番目以内に入ると言われています。
またハングルは言語学者が驚ろくほど科学的ですばらしい文
字だと評価されています。
これは私たち韓民族が世界の中で大変重要な位置にあり、
ウリマルを大
事に育み、
また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大事な役割を担っているといえます。
日本で生まれ育った在日同胞がウリマルを習うことは簡単ではありません。
しかしウリマル
やハングルは韓民族の精神と知恵を学ぶことのできる道筋であり、
私たちの文化のルーツを理
解していくためにはなくてはならない重要な要素であることを忘れず積極的に学び活用し、
そ
の優秀性を伝えるひとりになってくれ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本団は今年創団70周年を迎えます。
70年の長い道を歩み、
民族差別の逆境の中で在日同胞の生活権向上のために闘う一方、
学びの場
を作り民族教育の灯火を照らすために民族学校を設立し、
各支部でウリマル教室を運営するなど、
在日同胞の民族的正体性および韓民族としての誇りを堅持するための活動に力を注ぎました。
そしてこれからも変わらず努力し続けます。
本日参加された皆様、
今日は日頃の学習の成果を十分に発揮して下さい。
皆様のこのような姿勢
が在日同胞社会においてウリマル学習の奨励に大きな力となることを期待し、
祝辞に代えさせて
頂きます。
17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격 려 사
주일본국대한민국대사관
특명전권대사 유 흥 수
먼저,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 이야기대회가 이곳 센다이에서 성황리에 열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
하드립니다.
오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 주신 학생 여러분들과 이들을 잘 지도해 주신 선생님, 학부모님,
그리고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여 준비해 주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미야기현지방본부와 센다이한국
교육원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 언론 등에서 한일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만, 한일간 학생 교류, 교원 교류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 등을 볼 때, 적어도 교육분야에서의 양국 관계는 크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작년은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이룬 뒤 50주년이 되는 해였고, 올해는 양국간
새로운 50년을 시작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지난 1월말에 서울에서 한일중 3국 교육장관회의가 개최되는 등
오히려 올해를 계기로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한중일 3국간 교육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일간 교육교류가 더욱 활발해 지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고 이해하는 인재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학교 안팎에서 이를 체득하고 계시는 참가 학생 여러분들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있어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살고 있지만 우리 자신들이 계속해서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익혀서 쓰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지금길이라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말과 글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혼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익히는 노력은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성장해 나가는 밑거름이 된다고 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길이며,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대회에 참석하신 학생 여러분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우리말과 문화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주일한국대사관에서도 한국어·한국문화 등 재일동포 교육은 물론 한일간 교육교류 강화 등을 위해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대회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미야기현지방본부와 센다이한국교육원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참가 학생 여러분, 선생님, 학부모님 등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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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激 勵 辞
駐日本大韓民国大使館
特命全権大使 柳 興 洙
まず、第22回在日本韓国人学生韓国語ウリマル話大会が、ここ仙台で盛大に開かれることを心よりお祝
い申し上げます。
本大会に参加するため懸命に準備した学生の皆さんをはじめ、ご指導の先生方、保護者の方々、そして大
会のスムーズな開催のため誠意を尽くして準備してくださった在日本大韓民国民団宮城県地方本部と仙
台韓国教育院関係者の皆様に心より御礼を申し上げます。
最近のマスコミなどで韓日関係が非常に困難な状況だと言っていますが、韓日学生交流、教員交流などが
活発に行われている様子から見ると、少なくとも教育分野での両国関係には大きな支障があるとは思えま
せん。ご存知のように、昨年は韓日両国が国交正常化から50周年になる年で、今年は両国間の新たな50年の
幕開けになる重要な年であります。去る1月末にソウルで韓日中3カ国の教育大臣会議が開かれるなど、むし
ろ今年を機に韓日両国だけでなく、韓日中3国間の教育交流がさらに活性化され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これらの韓日教育交流が一段と活発になるためには韓日両国の言葉や文化をよく知り理解した人材の役割
が重要ですが常に学校やその他にてこれらを身につけている学生の皆さんが、その主役になれると思います。
日本にいる私たちがたゆまず韓国語とハングルを学び、身につけ、それを使うことによって、私たちがア
イデンティティを持ち、競争力を高めていく近道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一国の言葉と文字は、その国の歴
史や文化、魂が込められているものです。それを身につける努力は個人の成長だけでなく私たちの社会が
成長していく基礎になると思います。最も韓国的なものが最も世界的だという言葉があるのですがその言
葉のように、韓国語と文字を学んで身につけることが、自分のルーツを探す道であり、グローバル人材に成
長する下地となるでしょう。
最後に、今日の大会準備のためご尽力されました在大韓民国民団宮城県地方本部と仙台韓国教育院の関
係者の皆さん、そして大会出場者の皆さん、先生片、保護者などすべての方々にもう一度感謝の言葉を申し
上げます。
皆様方々のご健勝と幸福をご祈願致し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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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일본학교 초등부문
01. 태극기를 흔들며 ······································ 이 병 현(李丙炫) 川口市立上青木小学校 5年
02. 우리 할머니! ············································ 이 유 빈(李有彬) 福岡市立香椎東小学校 3年
03. 우리집은 작은 한국 ···················································· 정 결 찬 甲府市立羽黒小学校 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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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태극기를 흔들며
川口市立上青木小学校 5年
이병현
안녕하세요? 저는 가미아오키 초등학교 5학년 이병현입니다.
봄이나 가을에 운동회를 할 때에는 운동장 가득히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상점가에서도 만
국기가 달려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은 그 속에서 태극기를 찾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그 속에서 태극기를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찾으면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글학교에 한글을 배우러 가기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것이 더 재미있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글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노래도 하고 만들기도
하니까 한글학교가 점점 재미있고 토요일이 매일 매일 기다려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글공부도 재미있습니다.
가끔 우리아빠가 말씀하십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더니, 우리 병현이가 이제 책도 잘 읽네.”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아서 더 열심히 한글을 공부합니다.
저는 한글학교에 다니며 또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태극기입니다. 처음에는 태극기가 너무
그리기가 어렵고 이상했습니다.
‘일본 국기는 동그라미 하나만 그리면 되고, 우리 누나가 좋아하는 프랑스 국기는 선을 두개만 그리고 색을
칠하면 되는데, 태극기는 3, 4, 5, 6 선 그리기도 어렵고, 가운데 태극문양도 그리기가 너무 어려워서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태극기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과 가운데 태극문양 네모서리의 건곤감리는 각각 다 의미가 있었습니다. 태극기의 흰색 바
탕은 밝고 순수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나타냅니다.가운데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의
미합니다.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는 각각 하늘 땅 물 불 등을 상징하며, 음과 양의 조화로 변화·발전하는 우주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 뜻을 하나하나 알고 보니 태극기가 너무 멋지고 자랑스럽게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태극기를 그려보세요. 그리고 태극기를 가지고 한국선수들을 응원하러 저와 같이 경기장에 가보실래요?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도 치면서 같이 신나게 응원해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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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太極旗を振って
李 丙 炫
こんにちは。 ぼくは上青木小学校5年生の李丙炫です。
春や秋に運動会をするときは、運動場いっぱいに万国旗がはためいています。そして、時には商店街でも、
万国旗がかかっていることをみます。
皆さんはその中で太極旗を見つけたことがありますか?
ぼくはその中で太極旗を見つけるのが好きです。そして見つかった場合、非常に気持ちがいいです。
ぼくは幼稚園に通い始めたときから、ハングル学校に行くようになりました。最初はハングル学校にハン
グルを習うために行くより友達と遊ぶことがより楽しくて通うようになりました。ハングル学校に行けば
友達と一緒にゲームをして、歌も歌って、工作をするので、ハングル学校がますます楽しく土曜日が毎日楽
しみでした。しかし、今は遊ぶのも楽しいですが、ハングルの勉強も楽しいです。
時々ぼくの父が言います。
「寺子屋の3年で風月を歌うと言われるように丙炫は今では本を上手に読むね。」
この言葉を聞くと気持ちが本当に良くて、より熱心にハングルを勉強します。
ぼくはハングル学校に通って、また学んだことがあります。それは韓国の太極旗です。最初は、あまりにも
太極旗を描くのが難しく思いました。
[日本国旗は円だけ描いたらいいし、ぼくの姉が好きなフランス国旗は線を二つだけ書いて色を塗るの
に、太極旗は3・4・5・6線を描くのも難しく、中の太極文様も難しすぎて、なんでこんなに難しく作った?]と
思いました。
ところがある日、先生が太極旗について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太極旗の背面、その真ん中の太極文様、四卦の乾坤坎離はそれぞれの意味を持っていました。
太極旗の白地は、明るく純粋で、平和を愛する私たちの国の姿を表しています。
真ん中にある太極文様は陰と陽の調和を意味しています。
四卦の乾坤坎離は、それぞれ天と地、水、火などを象徴し、陰と陽の調和によって変化・発展する宇宙の姿
を意味しています。
今、その意味を一つ一つ知って見ると太極旗がとても格好良くて誇りに思ってます。
皆さんも太極旗を描いてみましょう。そして太極旗を持って韓国選手たちを応援しにぼくと一緒に競技
場に行きませんか。太極旗を振って拍手もしながら楽しく応援してみましょう。
大韓民国パチパチパチパチ 大韓民国パチパチパチパチ
聞いてくださっ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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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우리 할머니
福岡市立香椎東小学校 3年生
이유빈
여러분, 혹시‘빼다지’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경상도 사투리로‘서랍’을‘빼다지’라고 한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제가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우리 할머니
덕분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 얘기를 해드릴까 해요.
우리 할머니는 경상남도 사천에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제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 보이면, 공놀이도 하며
언제나 재미나게 놀아주십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한번은 할머니께서“유빈아, 가세 가지고 온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가세’가 뭔지 몰라서“할머니,
그게 뭐예요?”라고 물었더니“가위 말이다 가위.”그제야 알아들은 제가“그런데 어디 있어요?”라고 다시
물으면“그 모티 돌아가면 빼다지 안에 있다.”라고 하십니다. 제가“할머니 뭐라구요?”라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더 큰 소리로“모티 돌아가면 빼다지 안에 있다고.”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할머니만
멀뚱멀뚱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아이고…….”하고 한숨을 내쉬며 직접 가지러 가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세수 할 때는“매매 닦어라, 왜 이리 게을받노.”, 오빠랑 싸울 때는“엥간이 좀 해라.”,
제가 옷을 고를 때면“영 파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그 모티 돌아가면 빼다지 안에 있다.”라는 말은“그 모퉁이 돌아가면 서랍 안에 있다.”라는 뜻이고,“매
매 닦어라, 왜 이리 게을받노.”는“깨끗하게 씻어라, 왜 이렇게 게으르니.”라는 뜻이며“엥간이 좀 해라”는
“그만 좀 해라.”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제가 옷을 고를 때 하시는“ 영 파이다.”라는 말은“전혀 안 이쁘다.
“라는 뜻이랍니다.
저는 매주 토요일에 토요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또 집에서도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할머니
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을 했더니 엄마께서는 후쿠오카에서도
하카타벤으로“しっとっと?みよったい。”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은 경상도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라서 한글학교에서 배우는 말과는 달라 모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와 서로 답답해하지 않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며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책에도 안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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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私の祖母さん
李 有 彬
皆さん、もしかして'ペダジ'が何の意味かご存じですか。
慶尚道(キョンサンド)の方言で'引き出し'を'ペダジ'と言います。日本で生まれた私がこの言葉を知って
いるのは私のお祖母のおかげです。今日は皆さんに私が一番好きな私のお祖母の話をしてあげるかと思っ
ています。
私のお祖母は慶尚南道の泗川に住んでいます。私が退屈に見えると私私たちとボール遊びをしながら面
白く遊んでくれます。
ところで祖母はたまに分からない変な言葉を発します。
一度は祖母が"ユビン、カセを持ってきて"と言いました。しかし、私は'カセ'が何なのか分からなくて"お祖
母さん、それが何ですか?"と尋ねると"はさみだよ。はさみ"。やっと聞き取れて私が"ところで、どこにあり
ますか?"と改めて聞くと"そのモッティを回ったらペダジの中にある。"と言いました。私が"お祖母さん、
どこですか?"と言ったら祖母はもっと大きな声で"モッティを回ったらペダジの中にあるよ。"と言いまし
た。そこで私は何も言えず、祖母をきょとんと眺めていました。すると祖母は"アイゴー"と言いながらため
息をついて直接取りに行きました。
こ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
顔洗う時は"メメタッカラ、ウェイリ ケウルバッノ"、兄と争う時は"エンガンイ ジョムヘラ"、私が服を
選ぶ時は、"ヨン パイダ"ということを言います。
皆さんはどんな意味かご存じですか?
私は毎週土曜日には土曜ハングル学校で韓国語を学び、また家でも毎日少しずつ勉強していますが、祖母
がこんな言葉を発する時は全然わかりません。このことで私が心配をしていたら、母は福岡でも博多弁で"
しっとっと?みよったい。"という言葉を使うように、祖母が言う言葉も慶尚道(キョンサンド)で使用する方
言なので、ハングル学校で学ぶ言葉とは違うので、知らないこともあるということでした。
しかし、私は愛する祖母とお互いに歯がゆい思いをせず、面白く話しながら遊びたいです。
ところが、本にも出て来ない慶尚道(キョンサンド)の方言をどうやって学んだらいいのかわかりません。
もしかして何かいい方法はありませんか?
今まで聞いて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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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우리 집은 작은 한국
甲府市立 羽黒小学校 6年
정결찬
"넌 언제 한국에서 왔니?"
"???"
"한국에서 언제 왔는데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는 거야?"
저를 처음 보는 한국 분들께 늘 듣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지금은 제가 유일한 한국 학생인 일본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한국말을 이렇게 잘하냐고요?
그건 바로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우리 집은 집안에서는 절대로 일본말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국말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말을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몸에는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르는데, 말을 못한
다면 반쪽이 되는 거라고, 가족 간의 대화만으로는 다양한 말을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한국 티브이
를 신청해서 날마다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 엄마, 형과 누나, 그리고 한국 티브이는 제가 한국말을 잘하게 만든 선생님인 셈입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아빠 친구분 집은 아이들이 일본말로만 대화를 하고 있어서 아빠는 왕따 당하는
거 같다고,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갔는데도 말을 잘못해서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전 한국말이 그렇게 어
려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험과 체험 교육이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
고 생각하신 부모님께서는 저희 삼 남매 모두에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형은 스웨덴 세계잼버리에, 누나는 야마구치 세계잼버리에 다녀왔고, 저도 앞으로 3년 후에 있을 미국 세계
잼버리 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형은 한국어 능력 시험인 토픽 6급에 합격을 했고, 누나는
일본 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고 있답니다. 저도 한국어 능력 시험도 보고 누나처럼 학생회장
도 해보고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늘 말씀하신답니다. 100점 받는 것보다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크라고, 성적이 좋고 나쁜 것
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노력을 하고 안 하고 가 중요한 것이라고,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게 아니라,
하고 안 하는 것뿐이라고,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열심히 놀아도
되는데 다치지는 말라고, 이렇게 키워 주시는 저희 부모님을 저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밖에서는 자유롭게 크라고 하시면서도, 집안에서는 한국말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나
가면 일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한국, 우리 집은 현관문 하나가 국경인 작은 한국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김치를 못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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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ぼくのお家は小さなかんこく
鄭 ギョルチャン
ねえ、ぼくいつ日本にきたの?」
「???」
「すっごく上手にかんこく語を使うけどいったいいつかんこくからきたんだい?」
はじめて会うかんこくのおじさんおばさん方にいつも言われる言葉です。
けれどぼくは日本で生まれたし、ここでようちえんにだって行ったし、今はぼくだけが、かんこく人というごくふ
つうの日本の学校にかよっています。
なのにどうしてこんなにかんこく語が話せるかって?
それはお父さんお母さんのおかげなんです。
ぼくのお家のルールで、家の中で日本語をつかうことはできません。
かんこく語をたくさん使わなくては、自分の国の言葉が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うよと、かんこくの血が流れてい
るのに、かんこく語を使えなければ ちゅうとはんぱになってしまうよと、家族どうしの会話だけでは足りないと考
えたおとうさんとおかあさんは かんこくのテレビ放送を家にとりいれてまいにちまいにちかんこく語をぼくに聞
かせてくれました。
だからぼくは、自然とかんこく語を話せ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おとうさん、おかあさんとおにいちゃんと、おねえちゃん、そしてかんこく語のテレビ番組は ぼくにかんこく語を
教えてくれた先生です。
ある日、ぼくのお家にあそびにきたおとうさんのお友達が言いました。
おれの家では子供たちが日本語を使うからおれだけ仲間はずれみたいだ、と。
それを聞いたぼくは、かんこく語ってそんなにむずかしいっけ?と思いました。
学校での勉強もだいじだけど、社会をいきていくためには、勉強だけじゃなく経験と体験も重要だとかんがえる
おとうさんとおかあさんは、ぼくたち3兄弟みんなをボーイスカウトに入れてくれました。
おにいちゃんはスウェーデンの世界ジャンボリー、おねえちゃんは山口での世界ジャンボリーに参加しています。
ぼくも3年後にあるアメリカでの世界ジャンボリーに参加するために、がんばろうとおもいます。
おにいちゃんはかんこく語のうりょくしけんのトピック6級を持っているし、おねえちゃんは日本人しかいない
ふつうの学校で生徒会長をしています。
ぼくだっておにいちゃんおねえちゃんみたいに かんこく語のうりょくしけんも、生徒会長もしたいです。
おとうさんおかあさんはいいます。
100点とるより心が温かい子になってねと、せいせきがいいわるいじゃなくてどりょくをするかしないかが大切
だと、べんきょうができないできるじゃなくて、べんきょうをしたかしないかだと、いつもどりょくする子になって
ねと、どりょくはぜったいにむくわれるんだと、たくさんあそんでね、だけどケガだけはしないでと、こうやってぼ
くを育ててくれたおとうさんとおかあさんをそんけいするし、愛しています。
そとでは自由だけど、家の中ではぜったいにかんこく語を使わなくてはいけないぼくのおうち、家のそとは日本
家の中はかんこく ぼくのおうちは、家のとびらが国境の小さなかんこくです。
…でもぼくは、ほんとうはまだキムチが食べられないんですけれど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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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일본학교 중등부문
01. 재일교포 우가자예요! ··································· 김 우가자(金 祐加子) 神港高等学校 2年
02. 부모님 같은 존재 · ········································ 민 수 지(閔秀智) 白鵬女子高等学校 3年
03. 나에게 있어 '우리'의 의미 · ·············· 민 지 상(閔志尚) 仙台市立上杉山通り中学校2年
04.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우정의 메신저 · ··· 신 인 기(申仁紀) 広島県立西高等学校 3年
05.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 이노우에 미사(井上美彩) 成田市立遠山中学校1年
06. 뮤지컬로 한국을 배워요 · ····이토 사유키(伊藤さゆき) 山口県立下関中等教育学校 5年
07. 일본과 한국사이에서 ···················· 조 설 아(曺雪雅) 長野県松本秀峰中等教育学校5年生
08. K-POP의 힘 ·········································· 최 소노카(崔苑華) 札幌市小樽高等支援学校3年
09. 내 마음 ··························································함 백 화(咸百花) 東大阪市立小坂中学校 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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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재일 교포 우가자예요!
神港高等学校 2年
김 우가자
안녕하세요? 저희 집에서는 평소에도“행주, totte”,“아이고, 죽겠다”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일교포
가정이라서 일까요? 한국말이나 문화를 접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에서 6학년까지 4년간 어린이 토요학교에 다녔습니다. 어린이 토요학교에서는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배웁니다. 또, 제가 살고 있는 고베에서는 10월 마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사람이나 재일교포가 모여서 한국어 스피치 대회를 하거나 한국어로 연극이나 노래를 합
니다. 매번 어린이 토요학교에서도 장구나 설장구 같은 전통 악기를 연주하거나 태권도를 공연하거나 했습니다.
무대에 서서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하니까 연습은 힘들었지만 할머니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정말 참가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토요학교의 추억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간 어린이 잼버리입니다. 전국에서 온
재일 한국인 초등학생이 모여서, 한국에 4박 5일 연수를 가는 것인데, 저는 그 때 처음으로 한국에 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께 들은 조국, 한국이 어떤 곳인지, 두근두근거려서 잠들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한국에서는 퀴즈형식으로 그 답을 찾으면서 서울 거리를 걸었습니다. 퀴즈형식이었기 때문에 그
배경이 되는 역사, 한국 특유의 사고방식 같은 평소에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않는 한국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
습니다. 또, 한국 초등학교에 가서 일일 체험을 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돼서 매우 기뻤습니다. 그 외에도 다 같이 댄스대회도 하고 롯데월드에도 가고, 평소에
한국에 가서 체험을 할 수 없는 것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어린이 토요학교에서 졸업하게 됩니다. 어린이 토요학교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되면서
막연히“한국이라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다시 한번 제대로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싶
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한국어와 한국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말이나 춤을 통해 조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배워 가면서 저 자신도 성장하고 재일 한국인으로서 일한
양국을 연결하는 외교사절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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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在日韓国人とし
金 祐加子
アンニョンハセヨ。私の家では普段から「ヘンジュ、取って~」や「アイゴ~、チュッケッタ」などの言葉が
飛び交っていて、在日の家庭ですが韓国の言葉や文化にふれあうことがたくさんあります。
私は小学校2年生から6年生までの4年間、オリニ土曜学校に通っていました。オリニ土曜学校では韓国語
はもちろん韓国の文化についてもたくさん学びます。また、私の住んでいる神戸では「10月マダン」という
のがあり、日本の人や在日が集まって韓国語のスピーチ大会をしたり韓国語で芝居や歌を歌ったりするの
ですが、毎年オリニ土曜学校から出演してチャンゴや三面太鼓などの伝統楽器を演奏したりテコンドーを
やってみせたりしていました。舞台に立って大勢の人の前で公演するので練習も大変でしたが、お婆ちゃ
んや周りの人達が公演を見て喜んでくれる姿を見て、本当に参加して良かったなぁと思いました。
土曜学校の思い出として一番心に残っているのは小学校5年生の時に行ったオリニジャンボリーです。
全国の在日韓国人の小学生が集まって韓国に4泊5日の母国研修に行くのですが、私はその時初めて韓国に
行きました。小さい頃からお爺ちゃん、お婆ちゃんから聞いていた祖国・韓国がどんな所なのかワクワクし
て眠れなかったのを今でも覚えています。韓国ではクイズ形式でその答えを探しながらソウルの町を歩き
ました。クイズ形式だったのでその背景にある過去の歴史や韓国特有の考え方など普段教科書では学べな
い韓国についてたくさん知ることが出来ました。また、韓国の小学校に行って一日体験をしました。一緒に
授業を受けたり食堂でご飯を食べたり、同じルーツを持つ人達と友達になれ、とても嬉しかったです。その
他にもダンス大会をしたりロッテワールドに行ったりと普段韓国に行って体験することの出来ないこと
がたくさん出来ました。
小学校6年生でオリニ土曜学校は卒業となります。オリニ土曜学校を通じて韓国のことを知っていくう
ちに漠然と「韓国人でよかった」と思っていましたが、高校1年生になってもう一度きちんと韓国について
学びたいと思い韓国語と韓国の舞踊を習い始めました。言葉や踊りを通じて祖国の歴史や文化についてよ
り深く知ることが出来たらなぁと思います。そして学んでいく中で私自身も成長し在日韓国人として日韓
両国をつなぐ架け橋となって生きていきたいで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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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부모님과 같은 존재
白鵬女子高等学校 2年
민수지
저는 우리말 이야기대회에 두 번째 참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말 이야기대회에 참가 한 것은 우리말 이야기
대회가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그런 소중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 겪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일본과 일본사회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중학생 때 일어났습니다. 중학교 입학식 날 아침 한국인을 협박하는 삐라가 저의 집 현관문과
차에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死ね’ ‘朝鮮人は出ていけ’ ‘学校にくるな‘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쇼크를 받았고, 슬프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일본사람 중에는 한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본인들은‘일본은 지진도 일어나고 방사능도 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일본인의
배려심’이라고 해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일본사람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웃고 있지만 진짜 내가 좋아서 웃는 것일까? 나한테 친절하게 하지만
진심일까? 내가 반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태도를 바꿀까? 그래도 정말로 나를 좋아할까? 일본사람을 대하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전과는 다른 내가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 정신적인 고통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3년이 지났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K-POP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소녀시대의 콘서트를 보러 봄방학 때 한국에 갔다 왔다는 친구도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을 합니다.
한국은 내가 힘들 때 쉴 수 있는 곳, 고민을 들어주고, 언제나 조용히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일본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으나 또 하나의 모국이기에 사랑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반반
으로 태어난 것은 바꿀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숙명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나의 소중한 부모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티격태격, 으르렁 거릴 때도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한 엄마와 아빠가 서로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자식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한국과
일본도 서로를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번 우리말 이야기 대회를 계기로 조금씩 조금씩
작은 발걸음으로 내딛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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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親のような存在
閔 秀 智
私はこのお話大会に出るのは今回で2回目になります。ウリマル お話し大会は自分を振り返り、これか
らの自分の生き方などについて考える時間を与えてくれます。以前、私は脅迫事件にあい、恐怖と不安の中
にいました。その事件は、私の中学校入学式の朝に起こりました。韓国人を脅迫するビラが我が家の玄関と
車にいっぱい貼ってありました。
‘死ね‘、朝鮮人は出ていけ‘、‘学校にくるな‘などの内容でした。私はとてもショック受け、悲しくてとても怖
かったです。日本人の中には韓国人を嫌う人もいるってことを初めてしりました。しかし、聞いた話による
と『日本は地震もあり、放射能もあるので韓国に帰れとの日本人の親切さ』だと。
以降、私は日本人を意識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笑っているけど本心なんだろうか? 私に親切にして
くれているけど本心なんだろうか?私が半分は韓国人だっていうことを知っても態度を変えないだろう
か?それでも私をきらったりしないだろうか?日本人を接することが怖くなりました。以前とは違う自分
がいました。不安と精神的に苦痛でした。 もう3年が過ぎました。
今は高校生になり、新しい友だちができました。K-POPが好きなお友だちがいっぱいいます。一緒に歌と
歌ったりお話をしたりします。少女時代が好きで春休み中に韓国に行ってきた友だちもいます。日本人皆
が韓国を嫌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ことに少し安心しています。
韓国は私が辛いとき宥めてくれる、悩みを聞いてくれる、いつもそばにいてくれる存在です。日本は私を
傷つけましたが、もう一つの母国なので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存在です。私が日本人と韓国人の間で生ま
れてきたのは宿命です。変えることも選ぶこともできない。
韓国と日本は私にとって大切な父母のような存在です。口喧嘩もしたり、意地はったりする時もあるけど
違う文化の中で生活していた父と母は互いの違いを認め合い、長所・短所も知り、理解し受け入れ子供た
ちのため努力しています。同じ国同士で結婚しても何かの理由で別れる人たちがいますが。
韓国と日本も国民のため、お互いの関係を理解し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そのようになるよう
私にもできる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その出来ることをみつけ、少しずつ前進したいと思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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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나에게 있어 ‘우리’의 의미
仙台上杉山通中学校 2年
민지상
“지상이 밥 먹었니?”
“마다 타베테나이요.”
“한국말로 해요!”
“아니요, 아직 안 먹었어요.”
우리집에서 자주 있는 부모님과 저와의 대화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한국에서 유학을 와서 여기에 정착해 제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집에서는 한국말, 밖에서는 일본말. 솔직히 때로는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13년을 살
아왔습니다. 한국 이름이‘민 지상’인 덕분에 초등학교 때‘오지상’이라고 놀림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이름
때문에 제가 일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왠지 다르다는 것이 싫어서 부모님께 투정을 부린
적도 많았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어느새 저를 놀리는 친구들도 없어지고, 학교에 가면 저는 다른 일본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중학생입니다. 단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저의 한국 이름 뿐입니다. 이렇게
주변의 친구들과 다르다고 느낄 때에 저는‘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할 때 어머니께 어디를 응원하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당연히
우리나라지!”
였습니다. 그 때 저는“우리”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
,‘우리 가족’
,‘우리 이웃’
,
‘우리 학교’,‘우리 선생님’,‘우리 친구’…. 부모님이 태어나 자란 곳은‘한국’, 제가 태어나 가족과 살고 있는
곳은‘일본’. 나의‘우리 나라’,‘우리 이웃’,‘우리 가족’은 어디일까? 나의‘우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커뮤니티 센터에서 2박3일간
피난생활을 하며 많은 이웃분들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우리 이웃’은 가까이에 있는 일본의 이웃이
금방 생각났습니다. 하지만‘우리 가족’은 한국인 부모님, 그리고 한국의 친척들입니다. 지진 때 할아버지댁에
피난을 갔다가 센다이로 돌아올 때에 할아버지는 저의 손을 꼭 잡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진 후 일년 뒤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지금까지 제 마음 속에 그 모습은 남아있습니다. 이렇게‘우리’라는 말은 저에게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우리’는 한국과 한국사람일 때도 있고, 일본과 일본사람일 때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태어난
한국사람이라는 뿌리와 자라온 일본이라는 환경 속에서 일본과 한국이 결코“남”이 아닌“우리”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두 나라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겠지만, 저에게 있어서 두 나라의 언어
와 문화는 각각 다른“남”이 아니라“우리”이기 때문에 양쪽 다 소중히 생각하며 배워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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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私にとって「ウリ」の意味
閔 志 尚
「ジサンイ、ご飯食べた?」
「まだ食べてないよ。」
「韓国語で話して!」
「アニヨ、アジッ アンモゴッソヨ。」
わが家でよくある両親と私の会話です。私の両親は、韓国から留学に日本に来て、ここで出会って私が生
まれました。私は家では韓国語、外では日本語、正直面倒くさい時もありますが、あれこれ13年間続けてい
ます。韓国の名前が「ミン ジサン」のおかげで、小学校の時は「オジサン」とよくからかわれました。名前で
私が日本の友達と違うことに気付き、何度も親に文句を言ったこともありました。中学生になって、私をか
らかっていた友達もいなくなり、学校に行くと私は他の日本の友達と違うことのない中学生に見えます。
ただ、私の韓国語の名前は、他の人と違うことを気付かせてくれます。このように、周囲の友達との違いを感
じる時、私は「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について考えます。
ある日、韓国と日本のサッカー試合があった時です。私は母親にどちらを応援するのかを尋ねました。母
親の答えは「当然ウリ国でしょう!」でした。その時、私は「ウリ」という言葉の意味を考えました。
「ウリ国」、
「ウリ隣人」「
、ウリ家族」「
、ウリ学校」「
、ウリ先生」「
、ウリ友達」
・・・。両親が生まれ育った国は「韓国」、私が生
まれて、家族と暮らしている国は「日本」。私の「ウリ国」「
、ウリ隣人」「
、ウリ家族」はどこなのか。私の「ウリ」
についてよく考えてみました。
2011年 3月 11日、東日本大震災のことがふと思い出しました。私は両親とコミュニティーセンターで2
泊3日間避難生活をしながら、たくさんの隣人の方々に助けていただきました。私にとって「ウリ隣人」は、
近くにいる日本の隣人だと思いました。しかし、
「ウリ家族」は韓国人の両親、そして韓国の親戚です。震災で
韓国のお祖父さんの家に帰った時、お祖父さんは私の手をぎゅっと握って「日本に戻らないで」と言いまし
た。震災から1年後、お祖父さんは亡くなりましたが、今まで私の心の中にその姿は残っています。このよう
に「ウリ」という言葉は、私にとってたくさんの意味を持っています。
私に「ウリ」は、韓国と韓国人を指す時もあれば、日本と日本人を指す時もあります。私は、私が持って生ま
れた韓国人というルーツに、育った日本という環境の中で、日本と韓国がけっして「他人」ではなく、
「ウリ」
の精神で暮らしています。日本で両国の文化を持って暮らすことは簡単ではないと思いますが、私にとっ
て両国の言語と文化はそれぞれ「他人」ではなく、
「ウリ」であるために、両方とも大切にしながら学んでいき
たいと思います。
ご清聴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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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우정의 메신저
広島県立西高等学校 3年
신인기
저는 한국인 4세 신인기라고 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제가 한국인이란 걸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어릴 때 한국인이라고 차별을 받은 적이 있어서 저 또한 차별을 받을까 두려워 한국인이란
걸 숨기고 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놀랍게도 한국인의 핏줄이 흐르고 있었나 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K-POP을 자주 듣고 한국에 흥미를 갖는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한국인이라는 것을 털어
놓으셨습니다.
제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릴 때부터 설날에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떡국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한국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맛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음식을 정말 좋아하고, 한복 입는
것이 진짜 즐겁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우리말 발음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져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히로시마 민단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던 중 올해
1월 공주 대학의 단기 유학을 통해 소중한 고국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말도 배우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제가 모르던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저의 관심은 히로시마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5월 3일, 히로시마 플라워 페스티벌
에서 한복을 입고,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에 참가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 사이에 200년에
걸쳐 총 12회 동안 조선 임금이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입니다. 특히 히로시마는 과거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왕래했던 시절 최대의 인력과 재력을 동원해 통신사를 접대한 곳입니다. 조선통신사는 옛날 저의 고향인 히로시마
현 구레시 시모카마가리도 경유했습니다. 그 당시 국서를 전달할 목적으로 한일 간 문화교류의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히로시마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은 양국 우호친선을 다지는 대표적인 행사로 매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조선통신사 재현행렬을 통하여 지역 시민들, 유학생과 함께 행렬을 하면서 많은걸 배웠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조선통신사를 통하여 한일 간에 문화를 교류하고 우호친선을 다졌듯이 저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한일 간의 문화
교류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인임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 유학을 계획 중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는 비록 차별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한일 두 나라의 문화를 공유하며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 문화와 우리말을 열심히 배워서
조선통신사처럼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우정의 메신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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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韓国と日本をつなぐ友情のメッセンジャー
申 仁 紀
こんにちは。私は韓国人4世の申仁紀と申します。
実は私は小学校高学年になるまで自分が韓国人だと知らずに育ちました。父が子供の頃、韓国人だという理
由で差別を受けていた事があり、私もまた差別を受けるのではないかと恐れていた為、韓国人であることを
隠していたようです。しかし、驚くべきことに私には韓国人の血が流れているようです。私が小学6年生の時
K-POPをよく聞いて、
韓国に興味を持っている姿を見て、
父は私に韓国人であることを打ち明けてくれました。
私が韓国人であるからかわかりませんが、小さい頃からお正月に祖母が作ってくれるトックがとても好
きでした。祖母が作ってくれた韓国料理はどれもおいしかったです
今は韓国料理が本当に好きで、韓服を着るのもとても好きです。しかし、私は成長していくうちに少しずつ、
祖母と祖父が聞かせてくれるウリマルの発音をおかしく感じ、高校1年生から本格的に韓国語を勉強するよ
うになりました。広島民団を通して一生懸命勉強しているうちに、いい機会が訪れました。今年の1月に公州
大学に短期留学をすることになり、貴重な祖国体験を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ウリマルも学び、世界各地から
来た友達と仲良く過ごしながら、知らなかった韓国の文化、韓国人の生活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りました。
韓国に対する私の関心は広島に帰ってきてからも続きました。去る5月3日、広島フラワーフェスティバル
で韓服を着て、朝鮮通信使再現行列に参加しました。朝鮮通信使は1607年から1811年の間200年にわたっ
て全12回、日本に派遣された朝鮮の君主の外交使節団です。特に広島は過去に朝鮮通信使が日本を往来した
時代、最大の人力と財力を動員して、通信使を接待した場所だそうです。朝鮮通信使は昔、私の故郷である広
島県呉市下垣内も経由しました。その当時、国書を伝達する目的でありながら、韓日間の文化交流の懸け橋
ともなったそうです。現在、広島では朝鮮通信使行列を両国友好親善の為の代表的な行事としており、お祭
りが毎年開かれています。私は今回朝鮮通信使再現行列を通して地域市民の方々、留学生と共に行列をしな
がら多くのことを学びました。私たちの先祖が朝鮮通信使を通して韓日間の文化交流をして友好親善を確
かめたように、私もまた、今回の機会を通して韓日間の文化交流の小さな助けになりたいと考えました
私は韓国人であることを誇りに思っています。このような自信をもとに韓国に留学することを計画して
います。祖父と祖母、そして父の時代にはたとえ差別があったとしても、これからは韓日二つの国の文化を
共有しながら仲良く過ごせるように日本で生活する同胞の立場を伝えたいと思います。それと共に私たち
の文化とハングルを一生懸命学び、朝鮮通信使の使節団もように韓国と日本をつなぐ友情のメッセンジャ
ー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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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成田市立遠山中学校 1年
이노우에 미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외국인 여행자가 일본에 도착해서 첫발을 내딛는 곳 나리타 도야마 중학교 1학년 이노우에 미사라고 합니다.
저는 여름방학이 되면 외할머니가 계시는 울산에 가곤 합니다.
한국에 가기 전부터 한국에 가면 어디에 놀러 가게 될까? 뭘 먹게 될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랑 무슨 이야기를 할
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가면 한국어를 잘 못 하는 저는 죄송하게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눈빛과 손짓 그리고 느낌만
으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해주시려는 마음은 잘 느껴집니다.
여러분, 양념치킨 좋아하세요?
네, 전 정말 정말 양념치킨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양념치킨과 늘 함께 배달되는 무를 전 더 좋아합니다.
그걸 잘 아시는 우리 외할머니는 늘 단골 집에 주문하실 때「우리 손녀가 그걸 좋아해서요. 무를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직 매운 김치를 잘 먹지 못하는 저를 위해 맵지 않은 물김치를 담아주시고, 반찬
이 많이 있는데도 한국 김을 꼭 싸서 입에 넣어 주신답니다.
외할아버지는 좀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계시지만 혹시 저희가 덥지는 않을까 모기에 물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
시면서 에어컨의 온도를 몇 번이나 체크하시고 모기약을 몇 번이나 뿌리시고 이불은 차지 않았나 몇 번이나 챙겨주
신답니다. 매년 가지 못해서 늘 시간만 나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국제전화를 자주 하시는 저희 엄마는 특별
한 내용이 없어도 호호 하하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길게 하십니다. 그런 엄마가 좀 바빠서 전화를 못하시면 외할아버
지께서 카카오톡으로 전화하십니다. 엄마에게「바쁘냐? 왜 전화 안 하노? 아이들은 뭐 하노? 밥은 묵았나?」라는
말에 엄마의 눈시울은 어느새 눈물이 가득합니다. 그런 엄마를 보는 저도 왠지 가슴이 뭉클해져요.
이런 저희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엄마는 저희를 꼭~ 껴안으시고 얼굴에 뽀뽀를 정말 자주 하시는데요.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시면 저희를 무는 독
특한 취미가 있으십니다.
그런데 제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외할아버지가 제 동생을 무는 걸 보고, 오! 엄마랑 똑같네! 엄마는 범띠여서 그렇
다고 치더라도 외할아버지는 나랑 같은 원숭이띠인데 무는 취미가 있구나! 음~ 이것도 사랑의 표현이구나! 라고 느
꼈답니다.
제가 사는 나리타에서 지바 한국어 교실에 오는 시간은 자동차로 1:30분이나 걸립니다. 그 길을 아빠 엄마는 힘들
어하시지 않고 열심히 데려다 주셔서 한국어를 지금까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까지 들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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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私の祖父と祖母
井上美彩
みなさん、こんにちは。
私は外国からの旅行者がはじめて訪れる町、成田の遠山中学校1年、井上美彩といいます。私は夏休みになる
と、母方の祖母がいる蔚山に行くことがありました。
韓国に行く前から、韓国に行ったらどこに遊びに行こうか、何を食べようか、祖父や祖母とどんなお話をし
ようか、考えていました。
でも、いざ韓国に行ってみると、韓国語が上手く話せないので、申し訳なくも祖父と祖母の目線や手振りで、
なんとなく会話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それでも祖父と祖母は、
私に対して多くの事をしてくださろうと気を使っている、
その心を強く感じました。
みなさん、ヤンニョムチキンは好きですか?
はい、わたしは本当にヤンニョムチキンが大好きです。でも、ヤンニョムチキンには必ず付いてくる大根の
漬物がもっと好きだったりします。それを良く知っている祖母は、いつもたのんでいる馴染みの店に注文をす
るとき、
「孫娘が大根の漬物が好きなので、もっともらえないか?」と聞いてくれます。
そのほかに、まだ辛いキムチを食べられなかった私のために辛くないムルキムチ漬けてくれたり、おかずが
十分なときでも、必ず韓国のりをまいて口に入れてくれたりしました。祖父はとても無口な人ですが、私たち
が暑くないか、蚊に刺されてないか、つねに気に掛けてくれます。エアコンの温度を何度も確認したり、殺虫剤
をまいたり、毛布をけっとばしてないか何度も確かめたりしてくれたそうです。
毎年行くことができなくて、時間さえあれば祖父、祖母に国際電話を掛ける私の母は、特に話す内容が無く
ても笑いながら長話をします。そんな母が忙しさのためにしばらく電話をしないでいると、祖父からカカオト
ークで電話がきます。
母に忙しいのか?なんで電話しないのか?子供たちは何をしているのか?ごはんは食べたのか?といった
言葉に、母はいつのまにか少し涙を浮かべていました。そんな母の姿をみると、私の胸も締め付けられるような
気がします。
このような母と祖父との間に、共通点を見つけました。
私たちの母は、しばしば私たちをギュッと抱きしめたり、頬にキスをしてきたりしますが、私たちのことを
とてもかわいいと感じた時、噛んでくるといった独特な趣味があります。
私の妹が生まれた時に、祖父が妹を噛んでいるのを見て母と同じだと思いました。母は寅年だからとして
も、祖父はわたしと同じ申年なのに、噛む癖があるのだなと、これも愛情表現なのだなと感じました。
私が住んでいる成田から千葉の韓国語教室までかかる時間は、車で1時間半ほどかかります。父と母はその
道のりを苦にせず私を連れて通ってくれたおかげで、今まで韓国語を習うことができました。
これからも韓国語を懸命に勉強して、外祖父や外祖母と韓国語で会話ができるように努力していきたいと思
っています。
最後まで聞いてくださり、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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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뮤지컬로 한국을 배워요
山口県立下関中等教育学校 5年
이토 사유키
이 노래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명성황후’라는 드라마의 삽입 곡입니다. 제가 처음 이 곡을 듣게 된 것은 3
년 전,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계시던 우리 엄마 덕분입니다. 우연찮게 드라마의 노래 소리가 제 방까지 들려왔
고 처음에는 무심히 흘려 들었는데 자꾸만 가슴 속으로 파고 드는 선율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계시던 엄마에게 왜 매일 그렇게 한국드라마만 보냐고 물었더니,“아빠가 한국사람이니까 엄마도
한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며 공부하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가 너무 드라마에
몰입한 나머지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보더니 잠꼬대 하는 거야?”하고 다시
물었는데“아냐, 실은 아빠는 재일 한국인이야. 할머니께서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서 일본으로 와서 살게
되셨대”저는 엄마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하셔서 농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제 반응에 엄마가 더 의아해 하셨습니다.
“아빠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학교를 다니며 일본사람처럼 자랐지만 한국사람인 건 바뀌지 않아. 그리고 두
나라의 문화를 동시에 접하고 공부할 수 있는 이 환경이 너희들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 앞으로 한국어
공부도 시작하고 한국에 대해서 알아 가면 좋을 것 같아”엄마는 그 동안 여동생과 저만 모르고 있었던 정말 많
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 한동안 힘들게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극단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부산광역시 조선통신사행렬 재현행사에
저희 극단이 초대되어 부산에서 공연을 하고 왔습니다. 물론 그 때 제가 한국에서 받은 감동은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부산공연이 있었고 그 공연을 통해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한국의 역사나 한국에 대해 배운 건 거의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저를 아버지
의 나라와 선입견 없이 만나게 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시모노세키 한국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보시던“명성황후”라는 드라마는 역사적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기의 암울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역사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 드라마에서 흘러 나오던 애절한 음악이
나를 끌어 당겼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못했고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음악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사람의 희로애락의 정서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 한국과 내 어머니의 나
라 일본의 가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시대의 암울한 역사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신음하던 시대는 지났습
니다.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
가서 뮤지컬 공부를 하면서 한국을 알아갈 기회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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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ミュージカルで韓国を学ぶ
伊藤さゆき
この歌は皆様もよくご存じである“明成皇后”というドラマの挿入曲です。
私が初めてこの曲を聴くようになったのは、3年前韓国ドラマにすっかりはまっていた母のお陰です。偶
然ドラマの歌の声が私の部屋まで聞こえてきて初めは何気なく聴いていましたが、どんどん胸を打つ曲に
心が惹かれ始めました。そこでドラマを見ていた母に何で毎日そんなに韓国ドラマばかり見ているのかと
聞いたら「お父さんが韓国人だからお母さんも韓国についてもう少し知りたいからドラマを見ながら勉強
しているのよ。」という答えが返って来ました。
私は、母がかなりドラマに没頭し、作り話を話していると思いました。
「ドラマを熱心に見過ぎたので戯言
を言っているの?」ともう一度、聞くと「いや、実は、お父さんは、在日韓国人なの。お祖母ちゃんが幼い頃、親
と一緒に日本に来て暮らすようになったんだって。」私は、母が何でもないように話すので冗談だろうと思
いました。私は、半信半疑でありながらもどんな反応をしなければいけないか一瞬、頭の中が真白になりま
した。逆にそんな私の反応に母がもっと怪訝そうでした。 「お父さんは、日本で生まれ、日本の学校に通い
日本人のように育ったけど韓国人であることは変わらないわ。そして、二つの国の文化を同時に学ぶこと
ができるあなたたちは大きな幸運だと思いなさい。これから、韓国語の勉強もしながら韓国について知っ
ていけばいいと思うわ。」母は今まで妹と私だけが知らなかった沢山の話をしてくれました。しかし、私は依
然と頭の中が混乱して一時期苦しみながら過ごさなければいけませんでした。
私は、かなり幼い頃からミュージカル劇団に入って活動していますが昨年には釜山広域市の朝鮮通信使
行列の再現行事に私達の劇団が招待を受け、釜山で公演をして来ました。勿論、その時、韓国で受けた感動は
特別なものでした。
私が自分の存在に対して悩んでいた時、釜山公演があり、それを通して大きな決断をしました。私が通っ
ている学校で韓国の歴史や韓国について学んだことは全くないですが、私が好きな音楽を通して父の国に
先入観を持たず出会い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下関韓国教育院で韓国語を学ぶようになり、知った事実で
すが、母がこんなに熱心に見ていた「明成皇后」というドラマは歴史的に日本が韓国を統治していた時期の
悲しく暗い話だそうです。歴史については、まだ、よくわかりませんがそのドラマの中に流れて来る哀愁を
帯びた音楽が私を引き寄せたように自然に近寄って行こうと思います。
私は、日本で生まれ育ったので韓国についてまだ、知らないことだらけです。
学校で学ぶことも出来ず、接する機会も多くありませんでした。これから、音楽を通して韓国語を学び、韓
国人の喜怒哀楽の情緒を理解しようと思います。
今は、父の時代の悲しく暗い歴史の垣根の中に閉じ込められ苦しむのではなくお互いに信頼する雰囲気
の中で韓国と日本が仲良くしてい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思います。近いうちに韓国に行き、ミュージカル
の勉強をしながら韓国を理解する機会が来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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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松本秀峰中等教育学校 5年
조설아
저는 나가노 마츠모토에서 온 고등학교 2 학년 조설아라고 합니다.
제가 한국어 스피치대회에 나오는 것은 이번이 3번째가 됩니다. 제가 처음으로 스피치대회에 나간 것은 8년 전,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민단의 어린이토요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추천으로
친구와 같이 한국의 전래동화를 한국어로 발표했습니다.
그 뒤로 특별히 한국어 공부를 한 적 없이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토요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어
를 쓰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듣거나 저에게 한국어로 말해
주셨기 때문에 한국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어머니의 추천으로 처음「한국어능력시험」을 보았고, 그 후 혼자서 다시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
었습니다. 다음 해「한국어능력시험」에서는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고, 인생에서 2번째 한국어스피치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한국어공부를 하게 되면서 가족들과 한국드라마나 한국방송을 더 많이 보고, K-POP 노래를 듣거
나, 한국의 문화를 더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사람이지만 한국보다는 일본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자연스럽게 일본어
로 생각하고 일본어로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는‘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지?’하고 고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주위로부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주변과
나는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끼면서, 저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재외동포 청소년 모국연수에 참가하면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 행사를 통해서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웠고,
자신이 한국인인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모인 재외동포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문화는
물론, 여러 나라의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저에게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
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서 저에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가끔 좋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학교 역사수업
에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을 나쁘게 말하는 친구들을 보거나, 일본 미디어에서 한국의 일부「반일시위」를
보도해 마이너스 이미지를 심어 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일본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슬픕니다. 역사적인 문제, 영토 문제 등의 민감한 문제 때문에 항상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
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TV와 신문 등의 언론이 편파보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좋아해서 일본어를 배우는 한국 사람들도,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젊은 세대
에게 마이너스 이미지를 전염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지요? 재일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한국과 일본 모두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두 나라가 서로의 나쁜 부분만 비난하
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고 좋은 부분들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우호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 한국인으로 이 일본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
과 만화, 음악이 있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본의 문화를 즐기면서 생활하고 있습
니다. 그리고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와 한국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에 공헌할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의 생
활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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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二つの国の挟間で
曺 雪 雅
私は、長野県松本市から来た高校2年生の曺雪雅です。
私が韓国語スピーチ大会に出るのはこれで3回目になります。私が初めて大会に出たのは8年前、小学校3年
生のときでした。当時、私は民団のオリニ土曜学校で韓国語を勉強していましたが、先生の勧めで、友達と一緒に
韓国の昔話を韓国語で発表しました。
それからは、特に韓国語の勉強をすることもなく中学生になりました。しかし、私は土曜学校で韓国語を勉強し
たので韓国語を書いたり読むことができます。そして、幼い頃から両親が韓国語で会話しているのを聞いたり、私
に韓国語で接してくれたから韓国語で話すこともできました。
中学2年生のときには母の勧めで、初めて「韓国語能力試験」を受け、その後一人でまた韓国語を勉強し始めま
した。そして次の年の能力試験では更に良い結果を出すことができ、人生で2回目の韓国語スピーチ大会にも参
加しました。韓国語の勉強を始めてからは家族で韓国のドラマやテレビ番組を見ることも多く、K-POPを聴いた
り、韓国の文化を理解し更に楽しむことができました。これからも熱心に韓国語の勉強を続けたいと思います。
私は、日本で生まれ育った韓国人です。韓国人ですが、私は韓国よりも日本のほうがより親しく感じ、物事を考
えるときも自然的に日本語で考え、日本語で話します。小学生の頃、自分は日本で生まれて日本で生活しているの
になぜ韓国人なんだろうと悩んでいました。学校に通っているとき周りからは少し違う目で見られている気がし
たし、周りと自分は違うんだということを感じる場面が多く、私はそれが嫌でした。
しかし、
「在外同胞青少年母国研修」に参加してからは自分と同じ境遇の子どもがたくさんいることがわかり、
友達をたくさん作って、皆と自分の経験や悩みを共有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また、行事を通して韓国の歴史や伝
統的な文化を学ぶことができ、自分が韓国人であることに誇りを持てるようになりました。全世界から集まった
在外同胞の交流を通じて韓国の文化はもちろん、さまざまな国の文化を肌で感じることができ、自分にとってと
ても良い経験になったと思います。そして何よりも自由に韓国語で会話ができた自分自身に自信を持てるように
なりました。
韓国人として日本で生活していく上で、高校生になった今でも嫌な気持ちになることは時々あります。学校の
歴史の授業で韓国の話になったときに韓国のことを悪く言うような人を見たり、日本のメディアが韓国の一部の
反日デモを報道してマイナスなイメージを持たせてしまっているのを見て、とても心が痛いです。
私が韓国にいるときも、日本のことを悪く言っている人たちを見ると悲しくなります。歴史的な問題、領土の問
題などの敏感な問題があり、お互いに上手く友好的な関係を築くことは難しいことだとは思いますが、テレビや
新聞などのメディアが偏った報道ばかりするのはよくないと思います。日本が好きで日本語を学んでいる韓国の
人も、韓国が好きで韓国語を学んでいる日本の人もたくさんいるのに、若い世代の人達にまでマイナスなイメー
ジを伝染させるのは間違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在日韓国人として今まで生きてきて、日本と韓国それぞれに良いところがたくさんあることを私は十分に知っ
ています。お互いの悪い部分ばかりを責め合うのではなく、視野を広げて良い部分と悪い部分それぞれを認め合
える関係にな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ただ、今は韓国人としてこの日本の地で生活していることに感謝しています。日本には私の大好きな食べ物や
漫画や音楽があります。今日本に住んでいるからこそ経験できる、日本の文化と親しみながら生活できています。
また、韓国人であるからこそ、韓国文化や韓国人についても教わることができます。今、このように日本で暮らす
外国人としての経験を活かし、韓国と日本また国際社会に貢献できる人間になるため、日々の生活を大切にして
いきたい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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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K-POP의 힘
小樽高等支援学校 3年
최 소노카
저의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고 어머니는 일본 사람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인터넷에서 한국의 아이유라는 K-POP가수가 있고 그녀의 노래“좋은 날”이란 노래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 노래를 듣고 나는 K-POP에 푹 빠졌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K-POP가수를 조사했습
니다. 동영상으로 멋있고 섹시하며 깜찍한 가수들의 많은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K-POP아이돌과 한류스타들이 다양한 버라이어티 쇼나 음악 프로그램, 드라마 등에서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
를 전합니다. 이런 문화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에 흥미를 가지고 한국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사실 제 친구도“방탄
소년단(防彈少年團, BTS)”이라고 하는 K-POP아이돌을 좋아해서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저
는 기뻐서 여러 가지 한국어 단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했습니다. 거기에서 친구들
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유튜브에서 다운로드 한 K-POP아이돌의 동영상을 보고 들으며
힘을 냈습니다. 한국어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내용의 가사가 나오면 그 곡을 계속 들으면서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런 곡들을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어 다운로드 한 동영상을 같이 듣고 보기도 했습니
다. 그랬더니 친구가“이 노래 리듬도 괜찮고 좋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방탄소년단의“상남자”란 곡이었습
니다. 친구에게 가사의 내용을 알려주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일본어로 통역된 것을 찾아 종이에 똑같이 적어 친구
에게 주었습니다. 그 가사를 보고 친구가“좋은 뜻이다”라고 마음에 들어 해서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도쿄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코리아 타운이라고 말하는 신오쿠보에 친구와 선
생님과 함께 갔습니다. 친구와 같이 화장품과 한국 액세서리가 있는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친구가 에뛰드하우스
의 화장품을 사고 싶다고 해서 내가 가게에 있는 한국 언니한테 한국말로 말하고 친구에게 통역했습니다. 통역이
서투르면 가게의 언니가 도와 주었습니다. 사실 나도 한국을 좋아해서 코리아 타운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언니,
오빠와 더 한국 말로 얘기하고 싶었지만 평소에 일본말이 익숙한 탓에 한국말로 대화를 할 때 많이 서툴러 잘하
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K-POP을 통해서 한류의 열풍이 전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한국
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더 많은 일본 친구들이 한국에 더욱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장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저의 작은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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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K-POPの力
崔 苑 華
私の父は韓国人で母は日本人です。
ある日、お父さんからインターネットで韓国のアイユーというK-POP歌手がいて、彼女の歌で「良い日」と
いう曲が良いと言われました。その曲を聞いて私は、K-POPにはまりました。それから、インターネットで
K-POP歌手について調べました。動画でクール、セクシー、キュートな歌手の沢山の映像がありました。
K-POPアイドルや、韓流のスターが色々なバラエティやミュージック番組、ドラマなどで韓国の料理や文
化を伝えてくれます。このような文化から日本人が韓国に興味を持ち韓国語の勉強を始めます。実は、私の
友達も「セブンティーン、防弾少年団、NU’EST」というK-POPアイドルが好きで私に「韓国語を教えて」と聞
いてきました。私はそう言われて嬉しくて、色々な単語を教えてあげました。
私が高等学校1年生の時に、寄宿舎に入りました。初めて家族と離れて生活をしました。そこで、友達とな
かなか上手くいかない時や、辛い時に、ユーチューブでダウンロードしたK-POPアイドルが歌っている映像
を見ながら聞いて、元気が出ました。韓国語の意味をわかっていたから、曲を聞いて自分にぴったりな内容
があった時は、その曲を聞いて勇気をづけられました。このような曲を友達にも紹介したいと思いダウン
ロードした映像を見せながら一緒に聞きました。すると、友達が「このリズムが良くてかっこいいね」と言い
ました。それは、防弾少年団の「上男子-男前」と言う曲でした。友達にも歌詞の内容を教えたくて、インター
ネットで日本語で通訳されてあるものを見つけて、紙にうつして、友達に渡しました。その歌詞を見て、友達
が「いい意味だね」と気に入ってくれて気分が良かったです。
高等学校2年生の時、修学旅行で、東京に行きました。そこで、コリアタウンという新大久保に友達と先生
と一緒に行きました。友達と一緒に化粧品や韓国のアクセサリーがあるお店に入りました。友達がエチュー
ドハウスの化粧品が欲しと言って私が、お店にいる韓国のお姉さんに韓国語で、聞いて友達に私が出来る限
りで通訳しました。私が言えなかった事は、お店のお姉さんが通訳してくれました。実は、私も韓国が好きで
コリアタウンに働いている韓国のお姉さんやお兄さんともっと一緒に韓国語で話たかったけど、日頃から
ずっと日本語で話をしてるから韓国語で話をしようとしても、なかなか出てこなくて悔しかったです。
今K-POPを通して韓流の熱風が全世界的に続いていると言われています。そこで韓国語をもっと勉強し
たいと思います。
そしてより多くの日本の友達に韓国への興味を持ってもらい、日韓の交流がより発展するように私も微
力ながらもお役にたちたいと思っており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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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내 마음
東大阪市立小坂中学校 3年
함백화
저는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가 일본인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4세입니다. 오늘은
제가 평상시에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저는 일본 학교에 있는 민족 학급에 다니고 있습니다. 평소에 일본 학교의 역사 교과서에서 밖에 접하지 못하는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민족학급에서 많이 접할 수 있고, 한국어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 공부
하는 시간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더 좋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족 학급 선생님께서
민족 학급 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일본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친구 중에서도 한국에 대해서나, 민족 학급이 왜 있는지 모르는 친구가
많이 있습니다. 수업 중에 한국이 비난 당하거나, 친구 입에서 가볍게 나온 한마디에 민족 학급의 존재가 바보 취급
당한 적도 있습니다. 소심한 성격의 저는 친구들의 그런 발언에 충고를 할 수 없을뿐더러, 다른 친구에게 상담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항상 마음속 깊이 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전부 이야기 했습니다. 이야기 하고 나니 지금까지
담아 두었던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민족 학급이 없는 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 학급이 없는 초등
학교, 중학교의 동포 친구들은 자신이 뿌리를 가지고 있고, 힘들고 기쁠 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나날을
지내고 있는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저는 일본에 민족 학급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자신이 한국에 뿌리가 있다는 기쁨, 동포 친구들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민족 학급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틀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재일한국인의 역사와 한국에 대해 더욱더 공부해서, 설령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휩쓸
리지 않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생각, 마음을 소중히 할 것 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 뿌리를 가진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대회에 참가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심한 차별과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이 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앞장서서 다른 나라의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 역사, 문화, 생활 그리고 종교를 알고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한다면 차별이 없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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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私の心
咸 百 花
私は母が在日韓国人、父が日本人の大阪府東大阪市に住んでいる在日4世です。
今日は私が日頃感じていることを話そうと思います。
私は日本の学校にある民族学級に通っています。普段日本の学校の、歴史の教科書でしか触れることのな
い韓国の歴史や文化に深く触れることができ、韓国語を教えてくれたりしています。私は韓国のことを勉
強している時間がとても好きです。でもそれよりも、もっと好きな時間があります。
それは民族学級のソンセンニムが、民族学級の生徒の話に耳を傾けてくれることです。
普段日本の学校に通っているので友達の中でも、韓国のことや、民族学級がなぜあるかということを知ら
ない人が多いです。授業中に韓国のことを非難されたり、友達の口から軽く出た一言で民族学級の存在を
馬鹿にされたこともありました。気の弱い私は友達のそのような発言に対して注意できるわけでもなく、
他の友達や、日本の先生に相談しても理解してくれるのか、と、いつも心の奥に溜め込んでいました。
そして、ソンセンニムが話を聞いてくれる機会を設けてくれて、すべて話しました。話すと、民族学級の仲
間たちやソンセンニムは、涙を流し私の辛い気持ちを全て共有してくれました。すると今まで心の奥に溜
め込んでいたものが消えて心が楽になりました。
しかし日本の小学校、中学校には民族学級がない学校がたくさんあります。民族学級がない小学校や中学
校の同胞の仲間たちは自分がルーツを持っていて、苦しいこと嬉しいことに対してどう感じ、どう日々を
過ごしているのか、と、とても気になります。
私は日本に民族学級をたくさん作って欲しいという思いがあります。自分のルーツのことを知ること、自
分が韓国にルーツがある喜び、同胞の仲間たちと交流する楽しさを知る機会が少ないのは本当に勿体無い
と思います。
民族学級という存在があるだけで物事を見る目が変わると思います。
そして私はこれから、在日の歴史や韓国のことをもっと勉強して、たとえ誰に何を言われても流されず、
自分のルーツに対する考え、想いを大切にしたいです。
私は日本に生まれ韓国にルーツがあることが本当に誇りで励みに思っています。このようにイヤギ大会
に参加できること、自分の想いを多くの人の前で話せるということがとても嬉しく思っています。
厳しい差別や偏見が完璧に無くなる世の中を作ることは難しいと思います。
だけど私たちが先頭となって、他国の一人一人の人生、歴史や文化や生活、宗教を知り、互いの違いを認め
ていけば差別がなくなる世の中へと変えることができ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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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한국학교 초등부문
01.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 ········································ 김 유 나(金維那) 名古屋韓国学校 6年
02. 우리말을 배우면서 얻게 된 긍지와 자부심 ··········· 이 현 아(李賢娥) 東京韓国学校 6年
03. 여러분, 소중한 내 이름을 돌려주세요! ·················· 정 하 은(鄭河恩) 東京韓国学校 6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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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
名古屋韓国学校 6年
김유나
저는 한국어가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읽기나 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말하기는 재미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단어가 두 개 있습니다.‘라이온’과‘라면’입니다.‘라이온’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라이온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색깔이 예쁘고 털이 복슬복슬해서 따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자를
쓰기 쉽기 때문입니다.
‘라면’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라면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라면은 매운 라면과 맵지 않은 라면이 있습
니다. 매운 라면 중에서는‘赤카라라면’을 먹을 수 있고 좋아합니다. 한국의 매운 라면은 너무 매워서 먹을 수
없습니다. 맵지 않은 라면은‘시오라면’을 좋아합니다. 전에는‘짜파게티’나‘사리곰탕면’을 좋아했었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렸습니다. 라면도 글자가 쓰기 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면 그 단어도 간단히 외울 수
있고 한국어도 금방 좋아집니다.
저는 싫어하는 단어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곰’이나‘복’이란 단어를 싫어합니다.
‘곰’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이유는 곰은 크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글자 쓰기도 어려워서 이 단어는 외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복’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좋은 뜻이기는 하지만 받침을 발음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복’이란 단어에 받침이 없었다면 쓰기 쉬웠을지도 모르고 외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을지
모릅니다. 제가 싫어하는 단어에는 거의 받침이 붙어 있습니다.
듣고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는‘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유는 그런 말을 들으면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어를 많이 배워서 한국어로 쓰여 있는 책을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글을 술술 쓸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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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私が思う韓国語
金 維 那
私は韓国語が難しいです。読んだり書いたりするのが難しいです。けれど、話したりするのは楽しいで
す。私の好きな単語は二つあります。
「ライオン」と「ラーメン」という単語です。
「ライオン」という単語が
好きな理由はライオンが好きだからです。色がきれいで、毛がもふもふしていてあたたかそうだからで
す。あと自分にとって韓国語で書きやすいからです。
「ラーメン」という単語が好きな理由は、ラーメンが好きだからです。ラーメンは辛いラーメンと辛く
ないラーメンがあります。辛い方は赤からラーメンが食べられるし、好きです。韓国の辛いのは辛すぎて
食べられません。辛くないラーメンは塩ラーメンが好きです。前はチャパゲッティやサリコムタンメンが
好きだったけど、たくさん食べたらあきてしまいました。
「ラーメン」も自分にとって書きやすいと思って
います。好きな単語は自分が好きなものだったら簡単に覚えられるし、韓国語でもすぐ好きになれます。
私は嫌いな単語がたくさんあります。たとえば「くま」や「福」という単語です。
「くま」という単語が嫌
いな理由は、くまが大きくて怖いからです。自分にとって書きにくく、この単語を覚えるまで時間がかか
りました。
「福」という単語があまり好きじゃない理由は、いい意味だけど、パッチムの言い方が難しいか
らです。私は「福」という単語が違ったら書きやすいかもしれないし、覚えるまで時間がかからないかも
しれません。私が嫌いな単語にはほとんどパッチムがついています。私が聞いて気分がよくなる単語は
「愛してる」という単語です。理由はそう言われるとうれしい気持ちになるからです。私は韓国語をたく
さん学んで韓国語で書いてある本が読みたいです。そして字がスラスラに書けるまで頑張りたい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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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우리말을 배우면서 얻게 된 긍지와 자부심
東京韓国学校 6年
이현아
안녕하세요?
저는 동경한국학교 6학년 3반‘이현아’입니다.
지금부터 우리말을 배우면서 얻게 된 긍지와 자부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고, 일본어와 영어는 동경에서 생활
하면서 익히게 되었습니다. 3개 국어를 사용하다 보니 한글과 다른 언어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어와
영어는 받침이 없어 문장으로 표현할 때 길게 늘여서 표현하는 일이 많아 불편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자음과 모음이 있고, 낱말 하나에 받침이 있는 경우가 있어 일본어와 영어보다 함축적이고 간략하게
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에는 이니셜이 있기는 하지만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NYPD는 어떤
사람에게는 New York Police Department 로 해석되지만, 제가 이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뉴욕의 프로
듀서인 줄 알았습니다. 이처럼 영어의 이니셜은 여러 가지 단어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뿐 만이 아니라
일본어도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어 어떻게 읽고 해석할지 헷갈렸던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어는 누가 읽어도 딱 한가지로 읽습니다.
예를 들면, 종이에다‘이현아’라고 써놓으면‘이현호’라고 읽는 사람은 한글을 못 읽는 사람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또한, 한글에 비해 영어는 표현할 수 없는 음이 너무 많아 불편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어에는 모음이 A, E,
I, O, U 다섯 글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글로는 간단히 표시되는 `ㅓ, ㅕ, ㅡ, ㅢ` 등은 영어로는 표기가
불가능합니다. 또한 `ㅐ, ㅒ, ㅚ` 등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한글에는 모음이 무려 10개나 되는데다가 이를 응용하면 얼마든지 이중 모음을 더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마 전 세계 사람들 중에 이제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002년 올림픽에서도 널리 알려졌고, 김연아 선수, 박지성 선수와 같이 이름난 선수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글은 다른 문자와 비교했을 때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글에는 받침이 있고, 한가지로만 읽어서 읽을 때 헷갈리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와 달리 다양한 표현방법이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언어입니다.
제가 이런 훌륭한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한글을 열심히 배워 한글의 장점을
다시한번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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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ハングルを学びながら、得られた誇りと自負
李 賢 娥
私は東京韓国学校6年3組「イヒョンア」です。
今からハングルを学びながら、得られた誇りと自負に関する話をします。
私はハングル、日本語、英語を使用しています。ハングルは、幼い頃から家で使用しているため、自然に身
に付けるようになり、日本語と英語は東京で生活しながら身につけました。
3ヶ国語を使用してみると違いが分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日本語と英語は終声になる子音がなく文章
で表現するとき長く伸ばして表現することが多かったです。しかし、ハングルには、子音と母音があり、単語
一つの脚がある場合があり、日本語と英語よりも含みであり、簡単に私の考えを表現することができまし
た。私の名前である「イヒョンア」は、ハングルでは、3文字だけなのに、日本語では5文字、英語では、8文字や
されます。
英語にはイニシャルがありますが、意味が正確に伝達されない場合もあります。例えば、NYPDはどのよう
な人にはNew York Police Departmentに解釈され、私がその言葉を最初に見たときに、ニューヨークのプロ
デューサーと思いました。このように、英語のイニシャルは、いくつかの単語として解釈することができま
すが、ハングルは集約していっても相手に同じ意味で配信されます。 つまり、ハングルの単語を短く表現
をしても意味が通じます。
「デジタルカメラ」の場合、ハングルで「デカ」との表現が可能です。
また、ハングルに比べて英語では表現できない音があまりにも多くて不便だったことがあります。英語に
は母音がA、E、I、O、U 5文字しかありません。
ハングルでは、簡単に表示されている`ㅓ、ㅕ、ㅡ、ㅢ`などは英語では表記できません。`ㅐ、ㅒ、ㅚ`なども表現
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一方、ハングルは母音がなんと10個もされているうえ、これを応用すれば、いくら
でも二重母音をより作成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おそらく世界中の人々の中今ハングルを知らない人はいないでしょう。ハングルは他の文字と比較した
場合、最も科学的で便利な文字です。現在、世界で最も多く使われている言語は、英語と漢字(中国語)です
が、この言語は3千年以上にわたって行われたことです。これに比べて、世宗大王は30年も経たない期間に、
科学的な方法でハングルを造られたと本で読みました。
ハングルは、他の言語とは異なり、様々な表現方法があり、世界的に認められた言語です。私、このような
ハングルを学ぶ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が本当に誇り、今後もハングルを一生懸命学んでハングルの利点
をもう一度広く知らせたいと思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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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여러분, 소중한 내 이름을 돌려주세요!
동경한국학교 6학년
정하은
‘하웅’,’하웡’심지어‘해융’으로까지 불린 적도 있는 제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하은.
안녕하세요. 저는 동경한국학교 6학년 2반의 정하은 입니다.
항상 예쁘다 착하다는 말과 함께 불리는 제 이름은 강물 하(河) 은혜 은(恩)의 한자를 씁니다. 제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에 감사했던 부모님께서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지으셨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1살에 아빠의 직장 일로 처음 일본에 와서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지만, 1학년 말 쯤부터 친구들이 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이름인 하은을 비롯한‘지은’,‘채은’,‘나은’,‘예은’등 한국의 여자 이름에 자주 쓰이는‘은’자가
일본어에는 해당되는 소리가 없어 일본어에서 가장 비슷한 모음인‘うん’으로 쓰다보니‘うんち’,’うんこ’
즉,’똥’,‘똥꼬’라는 말로 이름을 다르게 부르고 의미를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한국에서라면 평범하지만 나름 예쁘기도 한 제 이름이 일본어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여 개똥이, 소똥이와
같은 조금은 웃기는 의미로 다르게 전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럴 땐 이름을 바꾸고 싶을 만큼 속상해서 울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제게 제 이름의 소중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강물 같은 은혜’라는 성경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은혜로운 삶을 살길 바라시는 부모님의
소망과 사랑을 담은 소중한 이름이라는 것을요.
그때! 갑자기 저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일본어로는 내 이름인 하은의“은”자라는 글자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까?
“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나름 조사를 해본 결과,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어는 고쥬옹이라는 총 50개의 발음 기호를
가지고 있고, 한글은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로 총24개의 발음 기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 일본어의 글자 수가 더 많으니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 분이 많으실 거에요.
얼핏 보기에는 일본어보다 훨씬 수가 적어 보이지만, 한글은 이 24개의 자음과 모음이 서로 조화되어 다양한
발음을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문자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름을 제대로 표현하고 작은 소리의 차이를 다 나타낼 수 있는 섬세하고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일본에서 자란, 그리고 또 계속해서 일본에서 살아야 하는 저는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한국의 우수한 문화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 입니다.
그리고, 저는 초등학생답게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며 때론 신나게 친구들과 놀기도 할 것 입니다. 또한, 학교
에서도 배우고 있는‘한국어’,‘일본어’,‘영어’외에도‘중국어’,‘불어’와 같은 다양한 언어를 배워서 그러한
언어들의 특징을 비교하고, 나아가서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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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みなさん、私の貴重な名前を返しててください
鄭 河 恩
「ハウン」「
、ハオン」、さらに「ヘユン」とも呼ばれたこともある私の名前は何でしょう?
正解は「河恩」。
皆さん、こんにちは。私は東京韓国学校6年2組の鄭河恩です。
いつも可愛いくて優しいという言葉と一緒に呼ばれる私の名前は、川の意味の(ハ:河)と恵みの意味の
(ウン:恩)の漢字を使います。私が健康に生まれたことを感謝していた両親がいろいろと考え悩んだ末に造
られた名字です。
私たちの家族は、私が一歳の時にお父さんの仕事で初めて日本に来て、私が小学校6年生になった今まで
日本で住んでいます。小学校に入学してから楽しい学校生活を送っていたある日、1年生の末頃から同じ組
の男の子達が私の名前を正しく呼んでくれないことに気づきました。
それは私の名前である「ハウン」をはじめ、
「ダウン」「
、チェウン」「
、ナウン」「
、イェウン」など韓国の女の子
の名前によく使われる「ウン:恩」が、日本語では正しく音で表現できなくて日本語で最も近い発音である
「うん」となってしまい、
「うんち」「
、うんこ」、つまり「糞」という意味を持つ言葉に代わって元の意味が可笑
しくなってしまったことです。
韓国語の発音ではそれなりにきれいに聞こえる私の名前が、日本語では正しく表現されなくて、
「下手糞」
のようなあまり良くない意味に変わることを知り、その当時の私は自分の名前を変えたいと泣き出したこ
ともありました。ところが、両親は私に私の名前の大切さを教えてくれました。
「川のような恵み」という聖書の意味も含んでいる、そして何よりも私が恵み深い人生に導いて行くこと
を望まれる両親の希望と愛を込めた大切な名前であることを私にきちんと説明してくれました。
その時、突然私の頭の中に一つの質問が浮かびました。
「なぜ日本語では私の名前である「ハウン」という文字が正しく表現できないだろう?」
その疑問を持って私はいろいろと調べました。その結果を発表しますと、皆さんもご存知のように日本語
は「五十音」という合計50個の発音記号を持っており、韓国語のハングルは子音14字と母音10文字の合わ
せて24個の発音記号を持っています。
「あら! 日本語の発音文字が韓国語より多いじゃないか?」と思う方が多いと思います。
一見では日本語よりもはるかに数が少なく見えますが、ハングルは24個の子音と母音が互いに調和し
て、さまざまな発音を表現することができる素晴らしい文字体系を備えています。だから、私の名前を正し
く表現して小さな音の差をすべて示すことができる繊細でありながら科学的な文字であるハングルの優
秀性を、私は多くの人々に知ってもらいたいと思います。
韓国で生まれ、日本で育ち、そしてまた引き続き日本で住まなければなら私は韓国人という自負心を持っ
て韓国の優秀な文化とハングルの優秀性を知らせるために続けて努力します。そして、小学生である私は
一生懸命勉強し、仲良く友達と遊びながら元気よく生活し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また、学校でも学んでい
る「韓国語」「
、日本語」「
、英語」のほかに、
「中国語」「
、フランス語」のような、さまざまな言語を学んでそのよ
うな言語の特徴を比較し、さらにハングルの独創性と優秀さを広く世界の皆さんに知らせることができる
人になるように頑張ります!
最後まで聞いてくださいまし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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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한국학교 중등부문
01. 내 안의 한국어 · ················································ 김 혜 민(金慧玟) 大阪金剛高等学園 3年
02. 차별없는 재일한국인의 삶을 꿈꾸며 · ············ 윤 향 수(尹香穗) 京都国際高等学校 3年
03. 동경의 떡볶이 · ················································ 이 재 빈(李在彬) 東京韓国学校 高等部 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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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내 안의 한국어
大阪金剛高等学園 3年
김혜민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학교가 아닌 한국학교를 다니며,
국적은 일본이 아닌 한국입니다. 늘 한국인이신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와 동생과는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으며, 가족이랑 같이 우리 집 근처에 있는‘사랑방’이라는 한국 비디오방에서 예능이나 드라마를 빌려와 다 같이
모여 보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요즘에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을 재밌게 보고 있고, 드라마는
어렸을 때 즐겨봤던 궁으로 시작해 별에서 온 그대나 최근에는 태양의 후예 등의 드라마도 챙겨 봐왔습니다.
또 저녁에 밥을 먹고 있을 때면“음, 뭔가 부족한데,,, 아! 엄마! 김치는 없어요?”
“아이고, 아가야 마침 김치가 다
떨어졌단다”그 순간 입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우리 밥상에는 한국인의 맛! 김치가 있어야 했지요.
말할 때도 한국어,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을 때에도 한국어, 입맛도 한국인! 이렇게 한국에 한 번도 살아 본 적이
없어도 주변 환경 때문인지 토종 한국인인 저에게는 한국어란 제2외국어가 아닌, 틀림없는 나의 모국어였고 그래서
한국어를 쓰는 게 당연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어는 늘 제 곁에 있었죠.
한국어는 어려서부터 나의 짝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짝꿍, 한국어의 우수성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선생님이“애들아, 너희들 세종대왕이 한글을 어떻게 만드셨
는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음, 그러고 보니 쓰기만 했지 그 본질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네?’저는
제가 평소에 말하고, 읽고, 쓰는 한글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곧바로 학교 도서실에 들려 한글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모음이 가지고 있는 철학성에 대해서입니다. 모음은 세 가지의 글자, 3재를 기초로 해서 만
들어졌다고 합니다.‘.’은 하늘을 뜻하고,‘ㅡ’은 땅을 뜻하며,‘ㅣ’은 사람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땅이
있다하여‘ㅗ’가되며 사람 동쪽에 해가 있다하여‘ㅏ’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지인, 이 세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진 것이 바로‘한글’이 라는 것입니다!
저는 놀람과 동시에 반성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어를 사용만 했지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글을 쓰고 있었다
는 것을 미처 몰랐다니! 저는 다시한번 이렇게 멋진 한국어를 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이 멋진 한국어를 쓰
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어,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아리랑21’이라는 한중일 청소년들이 모여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교류회에 참가했습니다. 한
중일 청소년들이 모이면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할까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모두 아닙니다. 바로 우리말, 한국어
입니다. 각각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우리의 마음과 언어는 한국어라는 하나의 언어를 통해 이어졌습니다. 한국어라
는 언어를 가지고 그 나라만의 문화를 서로 공유했던 시간은 너무나도 행복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 한국어란 서로 떨어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체이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준 정말로 위대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58
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私の中の韓国語
金 慧 玟
私は日本で生まれ、日本で育った普通の高校生です。しかし、私は日本の学校ではなく、韓国系の学校に通
い、国籍は日本ではなく、韓国です。韓国人であるお父さんとお母さん、そして、お姉ちゃんと妹とは普段、韓
国語で話しており、家族と一緒に家の近くにある『サランバン』という韓国のビデオ屋さんでバラエティー
やドラマ借りてきて、みんな集まって見たりしていました。例えば、
「無限挑戦」や「ランニングマン」、最近は
「スーパーマンが帰ってきた」をみています。ドラマは幼い頃よく見ていた「宮」を始め、
「星からきたあなた」
や最近では、
「太陽の末裔」などのドラマも見てきました。
また、夜ご飯を食べているとき、
「なんか物足りないな。お母さん!キムチは?』
「アイゴ、ちょうどキムチ
がきれたのよ。」その瞬間食欲がなくなるくらい、食卓には必ず韓国人の味!キムチがおいてなければいけ
ませんでした。
話すときも韓国語、友達と手紙を送り合うときも韓国語、食べ物の好みも韓国料理!このように、一度も
韓国に住んだことがなくても周辺の環境のせいか、根っからの韓国人である私にとって韓国語とは第2外
国語ではなく、間違いなく私の母国語でした。それゆえに、韓国語を使うことは当たり前のことでした。この
ように、韓国語はいつも私のそばにいてくれました。
幼い時から、韓国語は私のパートナーでした。しかし、そんな私のパートナーである韓国語の素晴らしさに
気づいたのは最近のことでした。いつもとかわらず、授業を進めていた先生が「みんなは世宗大王がどのよう
にしてハングルをつくられたか知ってる?」
『う~ん、そういえば、使ってただけでその本質については考え
たことがなかったな。』私は普段話したり、読んだり、書いているハングルのことが知りたくなりました。
授業が終わった後、すぐ校内の図書室に寄り、ハングルに関する本を読んでいきました。いろんな話があ
りましたが、一番印象深かった話は母音がもつ哲学性についてでした。母音は三つの文字、三才を基礎とし
‘ㅡ’は地を意味し、
‘ㅣ’は人を意味しているそうです。天の下に地が
て創られたそうです。‘.’ は天を意味し、
あるとされ‘ㅗ’となり、人の東側に太陽があるとされ‘ㅏ’となるのです。このように天地人、この三つがお
互い調和して創られたのがハングルなのです! 私は驚いたと共に反省しました。今まで普通に韓国語を使っていて、使い慣れしていたせいかこんなに優
雅で、美しいハングルをつかってい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とは。私はもう一度この素晴らしい韓国語を使
っていることに感謝し、またこの素晴らしい韓国語を使っている韓国人ということが誇らしいとさえ思い
ました。これを機に韓国語、韓国までももっと愛すようになりました。
そして、最近では「アリラン21」という、日中韓の青少年たちが集まりお互いの文化を共有し合う交流
会に参加しました。日中韓の青少年たちが集まったらどの言語で話すでしょうか?英語?中国語?日本語?
すべて違います。そう、韓国語です。それぞれ異なる国から来ましたが、私たちの心と言語は韓国語という一
つの言語で繋がったのです。韓国語という言語を通して、お互いのその国だけがもつ文化を共有し合った
時間はとても幸せで大切な時間となりました。
このように、わたしにとって韓国語とは遠い心と心を繋いでくれる媒体であり、自分自身が韓国人である
ことに対する自負心をもたせてくれた偉大な言語だ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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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차별없는 재일한국인의 삶을 꿈꾸며
京都国際高等学校 3年
윤 향 수
여러분은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과거를 가지고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재일 한국인 4세로 태어났습니다.제 증조할아버지,할머니께서는 일제강점기 때 살길을 찾아서 일본에
건너오셨습니다.어렸을 때부터 한국문화,풍습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재일한국인에 대한 혐한시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거기서 저는 <朝鮮人、韓
国人出て行け!!>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치 저를 향한 말인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재
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비판을 하는 것인지 그날 이후 제 머
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한국인, 재일한국인, 일본인이 있는 교토국제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뿌리를 가진
친구들이 모여 있는 우리학교에서는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배우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눕니다.
제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국의 역사를 다른 친구들은 한국사 수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어 "이런 역사가
있는지 전혀 몰랐어."라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지금의 한일관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잘 모른 채 단지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본 것만으로 재일한국인들을
판단하고 차별합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선입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일본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역사를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쪽의 의견에 치우쳐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나오는 정보는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의견입니다.역사라는 것은 어느 한 사람,
매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윤리, 도덕의 기준에 맞추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제가 본 혐
한시위는 바로 이렇게 잘못된 역사인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일본 친구들은 저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향수 고향은 한국 어디야?","한국이름이 있는
것이 너무 부러워. 내 이름 한자를 한국어로 읽으면 어떻게 돼?", "한국어 알려줘". 이렇게 친구들이 다가올 때
저는 기쁘고 고맙고 행복해집니다. 적어도 우리 학교 친구들만은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고 앞으로 편견 없이 재일한국인을 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고 싶어 한국 대학으로 진학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배운 한국과 한국
에서 배우게 될 지금의 한국을 잊지 않고 다시 재일 한국인 5세, 6세 동생, 후배들에게 한국을 가르쳐주고 싶습
니다. 또 재일한국인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한국에 대해 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재일한국인이 일본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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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差別のない在日韓国人の暮らしを夢見て
尹 香 穂
みなさんは、在日韓国人としての暮らしについて考えたことがありますか?
私は、この世に住むすべての人々がそれぞれ多様な背景を持ち、違う暮らしをしていると思います。
私は在日4世として日本で生まれました。私のひいおじいちゃん、ひいおばあちゃんは植民地の時に生きる
ため日本に渡って来ました。幼い時から韓国の文化や風習の中で育ってきた私は在日韓国人ということにつ
いてあまり深く考えた事がなかったです。
しかし、ある日道を歩いてる時に在日韓国人に対するイトスピーチを見ました。そこで私は<朝鮮人、韓国
人出て行け!>という言葉を聞きました。まるで自分に対する言葉のようでとても心が痛かったです。そし
て、在日韓国人に対した差別がなぜこんなにもたくさんあるのか、私たちがどんな悪いことをしたからこんな
にも批判をするのか、その日から私の頭の中は疑問でいっぱいでした。
その後、私は韓国人、在日韓国人、日本人がいる京都国際高校に入学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多様なルーツを
もっている友達が集まっている私たちの学校では韓国の歴史や文化を学びながらお互いに意見を交換します。
自分にとってはすごく当たり前である韓国の歴史を日本の友達は韓国史の授業を通してはじめて知り「こ
んな歴史があるなんて全然知らなかった」と驚いたりもします。その後に今の韓日関係について少しは理解し
たという表情をしたりもします。人々は過去の歴史をよく分からないまま単にテレビや新聞で見たことたけ
で在日韓国人を判断し差別します。韓国と日本の間の複雑な関係と歴史についてよく知らないのに偏見をも
ち差別する日本人がどのくらい多いかということを考えると少しは悔しい気持ちになります。
歴史を見るときに一番重要だと思うことは片方の意見に傾いて判断をしたらだめだということです。テレ
ビや新聞を通して出てくる情報は片方に傾いた意見かもしれません。歴史というのはある一人、メディアが判
断できることではなく普遍的な道徳の基準に合わせて考えないといけないものです。私が見たヘイトスピー
チはまさにこのような間違った歴史認識から生まれたことだと思います。
学校で会う日本人の友達は私にこんな質問をします。
「ヒャンスの韓国の故郷はどこなんん?」
「
、韓国の名
前あるの、うらやましい。私の名前の漢字は韓国語で読んだらどうなるの?」
「
、韓国語教えて」。このように友
達が集まってくるとき私は嬉しくありがたく幸せな気持ちになります。少なくとも私たちの学校の友達は偏
らず、正しい歴史認識をもつようになりこれから偏見なく在日韓国人と接すると思うからです。
私は韓国についてもう少し勉強をしたいので韓国の大学に進学しようと思います。今まで日本で習った韓
国と韓国で習うことになる今の韓国を忘れず、また在日韓国人5世、6世の後輩たちに韓国について教えてあ
げたいです。また在日韓国人に対してよくない考えや偏見をもっている日本人たちにも韓国について教えて
あげたいです。それでこれから在日韓国人が日本社会で差別される存在ではなく、堂々と社会の一員として共
に生きていく社会を作りた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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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동경의 떡볶이
東京韓国学校 高等部 2年
이재빈
“우와~엄마 고마워용♥”
저는 동경한국학교 고등부 2학년 이재빈입니다.
대학입시를 핑계로 밤마다 야식 삼매경에 빠진 저의 오늘의 메뉴는 매콤달콤 떡볶이.
제가 사는 곳은 일본의 수도 동경 속 Korea Town이 번창한 신주쿠입니다. 그래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도 귀하거
나 별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비유학생으로 27년 전 일본에 오셔서 오늘에 이르신 어머님의 공치사는 좀 다르십니다.
“이거 엄마가 언니 임신했을 때 그렇게 먹고 싶어서 떡이랑 고추장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데? 너희는 복 받은 거야!”
복이 많은 저는 삼남매중 둘째로, 삼남매 모두 동경한국학교에 재학했고, 언니가 졸업 후, 남동생과 함께 즐거운 학교생
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유치원에선 서툰 일본어에 도시락이 달라서, 초등학교 시절엔 골프를 하는 언니의 활
약과, 귀하게 얻은 남동생의 압력 사이에서 늘 얌전하고 소극적이어서, 주위의 의견에 맞추며 살아가는 개성 없고 자신감
없는 아이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듯이 반장이 되면서 저의 생각과 생활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중1때는 환경미화 일등 , 중2때는 합창발표의 대성공을, 가장 기억에 남는 중3때의 문화제 가게오픈은, 반 학우들의 각
자의 의견과 이해의 차이로 반이 두 개로 갈라질 위기에 까지 처해졌지만 반장이었던 저의 최종 결정으로 진행한 생크림
빵과 파르페의 판매액이 학교 일등을 차지하는 반전을 겪으며, 단단한 학우 애를 경험했습니다.
일본유치원에서부터 주위와 다른 한국인으로, 또 형제중 둘째로 눈치 보며 주어진 것에만 최선을 다하며, 그것을 책임감이
라고 생각했던 저는 도전과 결정, 그리고, 결정을 행하는 과정의 조화와 결과에의 책임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하며 또한 얼마
나 큰 성취감과 자긍심,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것인가를 동경한국학교의 민족교육과 반장 활동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동경 속의 한국인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우리 한국인은, 직장인이든, 식당, 가게이든,
모두가 조용히 자기의 일만 하며, 주위의 눈치와 일본의 정세를 늘 살피고, 일본 속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개성과 목소리를
줄이며, 그저 성실히 살아오셨답니다.
하지만, 점점, 한국인이 많이 한곳에 모여, 서로 소통하고, 협조하면서, 커뮤니티가 탄생하고, 때마침 불어온 한류의 열
풍에 더욱 힘입어, 이제는 당당히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한국의 음식뿐만 아니고, 우리의 문화, 긍지를 널리 알리는 중
심거점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제가 먹는 떡볶이도 아주 흔한 간식이 된 것은 물론이고, 일본인들이 깃발을 들고
견학을 오는 동경속의 동경의 장소로 까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민족교육을 통해 배워 알게 된 역사 속에서의
많은 시련과 그럴 때 마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용감하게 지켜낸 조상의 업적, 어려운 처지일수록 뭉치고 모여 큰 힘을 쏟
아내는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국민성이 저와 우리 모두에게도 연연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우쳐 줍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로 시작된 88서울 올림픽을 청춘의 한 페이지로 사신 부모님처럼, 2020년 올림픽이 열
리는 대도시 동경 속에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살게 될 저는, 또 여러분은 어떤 모습의 한국인이 되어 있을까요?
그때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한국과 일본이 마음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존중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으
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저는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세게 속에서 한국을 자랑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
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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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재일본한국인학생 우리말이야기대회
東京のトッポキ
李 在 彬
「うわーお母さんありがとう!♥」
私は、東京韓国学校高等部2年生のイゼビンです。
大学入試をためだと毎晩夜食に埋もれている、今日のメニューは甘辛いトッポキ。
私が住んでいる所は日本の首都東京、その中でもKoreatownが盛んな新宿です。ですから、韓国料理を食べることは珍しく
も特別でもありません。しかし、校費留学生として27年前日本に来られたお母さんの話は少し違います。
「これ、お母さんがお姉ちゃんを妊娠したとき、すごく食べたくてもお餅とゴチュジャンを手に入れるのがどんなに難し
かったんだか… あなた達は本当にめぐまれているのよ!」
そんな、福多き私は3人兄弟の2番目で、3兄弟みんな東京韓国学校に在学し、お姉ちゃんの卒業後は、弟とともに楽しい
学校生活をおくっています。ふりかえってみれば、幼稚園では拙い日本語とお弁当の違いで、小学校ではゴルフをするお姉
ちゃんの活躍と、やっと授かった弟の圧力の中で、いつも静かで消極的なうえに、周囲の意見に合わせながら過ごす個性も
自信もない子供でした。
中学校に入学して、たまたま運よく班長になってから、私の思考や生活はがらっとかわりました。
中1の時は教室環境美化で一等賞、中2の時は合唱発表大成功、そして、いちばん記憶に残る中3の時の文化祭でのお店
オープンは、クラスの中での意見の衝突のせいで、分裂する危機にも陥りましたが、班長だった私の最終決定で決まった生
クリームのはいったパンとパフェの売上高が学校一を記録するドラマを経て、強い友情を感じることができました。
日本の幼稚園から周囲と違う韓国人として、そして、三兄弟の二番目として、いつも周囲を伺い任されたことだけに全力
を尽くし、それが責任感だと思い込んでた私は、チャレンジと決定、そして、決定する過程での調和や結果の責任感がどれだ
け難しくも大切で、またどれだけたくさんの達成感や、自尊心、そして自信を作ってくれるかを、東京韓国学校の民族教育と
班長の経験を元に教わりました。
同じく、東京に住んでいる韓国人達もたくさんの変化があったようです。以前の私たち韓国人は、職場でも、食堂、お店で
も、みんなもの静かに自分の仕事だけをやり、周囲を伺い日本の情勢をいつも把握し、日本の中で韓国人としての個性と声
を抑えながら、ただ一生懸命に暮らしてこられたといいます。
しかし、徐々に韓国人が集まり、お互い会話し、手助けしながら、コミュニティが生まれ、さらに風いてきた韓流の熱風に
背中おされ、今では堂々とコリアタウンを作り、韓国の料理だけではなく、私たちの文化、誇りを広める、中心拠点となりま
した。おかげで、今私が食べているトッポキもとてもステータスなおやつになったのはもちろん、日本人が旗を掲げ見学に
来る、東京の中の誇れるの場所にかわりました。
それは、私が民族教育を通じておそわった歴史上のたくさんの試練やそのたびに捨て身の覚悟で立ち上がり勇敢に守っ
てきた先祖の貢献、厳しい環境ほど、力合わせてより大きな力を出す韓国人の誇らしい国民性が、私と私たちみんなにも、知
らない間に流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新しく教えてくれます。
「世界はソウルへ!ソウルは世界へ!」で始まった 88ソウルオリンピックを青春の一ページに飾ったご両親のように、
2020年オリンピックが開かれる大都市東京の中で生きていく私は、また皆さんはどんな姿の韓国人になっているでしょうか。
そのときは、いまよりはもう少し韓国と日本がお互いの心で会話しお互いのちがいを認め、尊敬しあう、そんな世界になっ
てたらなと思います。そして、その中心で私は韓国と日本、さらには世界の中で韓国を誇り、伝える仕事をしているでしょう。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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